'영화'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0/01/22 한 운동선수의 죽음과 영화 매그놀리아
  2. 2010/01/13 [사사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 영화 300과 공부의 신 (2)
  3. 2010/01/06 [이사야-아모스와 대중문화의 만남(4)] 메뚜기와 영화 '앤트 불리'
  4. 2010/01/02 ‘라디오 스타’의 박민수보다 더 위로가 되는 분
  5. 2009/12/01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9)] 영광의 자리에 그가 없다
  6. 2009/11/09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5)] 질서 위의 은혜와 자유 (2)
  7. 2009/10/30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2)] 영화 '집행자'와 신명기 22장
  8. 2009/10/29 [신명기와 대중문화(21)] 이태원 살인 사건과 예수 (2)
  9. 2009/09/11 '예배만 달랑 한 번'이라니...
  10. 2009/09/11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4)] 손전등과 빛
  11. 2009/09/10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3)] 영화 '해운대' 대피령 왜 못 내렸나
  12. 2009/09/09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 순종하는 배우
  13. 2009/09/08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 승패를 초월하는 길 (2)
  14. 2009/07/19 영화 이집트의 왕자
  15. 2009/07/03 강호순과 용팔이는 쇼를 하는 것일까?
  16. 2009/06/23 히틀러와 김정일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인가? (4)
  17. 2009/05/16 김옥빈과 인생의 주인공 (6)
  18. 2009/04/29 영화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에서 발견하는 예수
  19. 2009/04/28 영어로 써 본 영화 '밀양' 영화평-기독교적 관점
  20. 2009/04/24 '천사와 악마'라는 영화가 나온 배경과 기독교

NFL Football: New York Giants at Washington Redskins (Nov 30)

 션 테일러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풋볼 선수였다. 마이애미(플로리다)대를 졸업한 후 북미풋볼리그(NF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5번으로 지명됐던 테일러는 '미스트(Meast)'란 별명을 가진 상대 공격수들이 두려워하는 수비수였다.

 '미스트'는 사람이란 의미의 'Man' 앞글자에 동물이란 뜻의 'Beast'의 B를 뺀 것을 합성한 표현이다. 어떤 이는 '절반은 사람, 절반의 짐승(half-man, half beast)'이라고 테일러를 불렀다. 그 정도로 그는 힘이 세고 위력적인 수비수였다. 

 총기 소유 문제, 음주 운전 문제 등으로 경찰 조사를 자주 받았던 테일러는 딸 재키(당시 18개월)가 태어난 후 건실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2007년 11월26일 새벽 1시45분 그는 자신의 집에서 침입자의 총에 맞았고 헬리콥터에 실려 병원으로 긴급후송됐지만 출혈이 심했던 탓에 27일 새벽 3시30분 사망했다. 

 테일러가 총에 맞았던 당시, 나는 톰 크루즈가 출연했던 영화 '매그놀리아(1999)'를 보게 됐다. 옛날 영화이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노부부는 싸우고 있었다. 이 부부는 틈만 나면 언성을 높여 싸웠고 총알이 장전되지 않는 총을 들고 서로 위협하곤 했다. 이 싸움에 질려버린 아들은 어느 날 몰래 총알을 넣었는데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싸움하는 중에 방아쇠를 당겨 발사됐다. 총알은 아버지를 비켜나갔다. 그런데 그 총에 맞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들이었다. 아들은 부모가 싸우고 있을 때 자살을 하고자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 창문을 지나가는 순간 총알받이가 되고 말았다. 그 총알을 맞지 않았더라면 아들은 살 수 있었다. 마침 아파트에서 그물을 쳐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들은 떨어져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들은 그러나 모친이 쏜 총에 맞고 사망했다.' 

 


 아들의 죽음은 필연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테일러의 죽음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방탕하게 살다가 착하게 살려고 결심했던 테일러는 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사람이 왜 피살을 당했을까. 토니 던지(인디애나폴리스 콜츠 감독)처럼 좋은 사람, 좋은 감독의 아들이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가장 위대한 NBA 아나운서였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칙 헌은 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뇌진탕으로 사망했을까.

 OOO는 왜 일찍 죽지 않고 저렇게 오래 사는 것일까. 
 
 인생에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한 후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따라 삶을 운영한다. 그러나 아무도 정답을 알 수 없다.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죽지 않으려고 불로장생 영약을 구하고자 했던 진나라의 시황제는 50세에 사망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빌 게이츠도 워런 버핏도 성녀였던 테레사 수녀도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신문에서 매일 부음 기사를 접한다.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아니면 10,20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은 죽음의 선을 지나야 한다. 

 '나만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우리를 욕심쟁이로 만들고 교만 덩어리로 만든다. 스포츠 스타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 피할 수 없는 필연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죽음의 피니시라인(finish line)에 다가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테일러의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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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감독 잭 스나이더 (2007 / 미국)
출연 제라드 버틀러, 레나 헤디, 도미닉 웨스트, 데이빗 웬헴
상세보기

사사기(Judges)를 보면 드보라(Deborah)라는 여성이 나오고 기드온이 나옵니다. 드보라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군대 지도자입니다. 강한 군사이면서도 그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시로 수천 년 후에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기드온은 하룻밤 사이에 장군이 되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그가 장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재능과 가능성을 보시고 그를 지명했습니다.

드보라는 기원전 1000-1100년 쯤의 여성인데 당시 그가 군대의 리더가 됐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입니다. 기드온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장군이 되어 하나님의 용사가 됩니다. 300이라는 영화가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는데 기드온은 바로 32,000명의 군대가 300명의 소수정예가 되어 전쟁터로 나가도록 한 수장입니다.



실제 영화 300 기드온을 포함한 300명의 용사들이 135천 명의 미디안군과 아말렉, 동방의 연합군을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로 누른 전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영화입니다.

그런데 300용사의 리더가 기드온이었고 기드온은 아무도 그가 장군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의 눈에는 리더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을 쓰시는 분입니다. 이는 그가 사람의 깊은 마음 속을 꽤뚫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깊은 곳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기에 어떤 이를 리더로 세우지 못하지만 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리더로 세우심을 성경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다윗은 자기 아버지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했던 아이였습니다. 사무엘이 미래의 왕이 될 사람을 찾아다닐 때 다윗의 아버지는 끝까지 다윗을 소개하지 않고 다른 형제를 소개했습니다. 그만큼 아버지의 눈에도 차지 않는 존재가 다윗이었습니다. 어리기도 했구요.  그 다윗을 하나님이 보신 것입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이집트에서 왕족으로 살기는 했지만 이집트를 떠나 목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은 말재주가 없고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대면해서 그를 리더로 세우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직접 리크루트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비웃었죠.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같은 방식으로 리크루트를 하셨습니다. 그가 선택한 제자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그다지 리더감이 될 수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선택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떤 미션이 성사됐음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잘나서 일이 잘됐으면 영광은 인간이 받습니다. 사람들도 그 사람이 잘나서 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못할 것 같은 사람을 쓰셔서 어떤 미션이 잘 이뤄지게 하실 때 하나님이 비로소 영광을 받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뛰어나고 준비된리더가 아닌 인간이 보기에는 배경이 엄청나지 않은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들은 깊은 내면 속에서 준비된 자들이지만 조건이나 배경을 보면 그다지 뛰어난 분들이 아닙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그렇습니다
. 그는 야구 선수였고 신학적인 배경이 막강한 분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신실함을 보고 쓰셨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그렇습니다. 그는 신학대학원을 다닌 분이 아닙니다. 그렉 로리 목사님이 그렇습니다. 그의 정식 교육은 고등학교가 전부입니다.  D.L 무디도 세상에서 요구하는 학문이 깊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도 회심 사건이 하나님이 그를 쓰시는 계기가 됐습니다.

물론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과 힘 있는 분들을 하나님은 쓰십니다. 하지만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셔서 사용하시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묘미입니다. 공부 많이 하고, 돈이 많고, 파워가 강력한 사람을 하나님이 주로 쓰실 것 같은데, 약한 사람, 마음이 순수한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공부의 신'이라는 KBS-TV의 미니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쳇말로 똥통 학교에 다니는 아이 5명을 모아서 최고 명문대인 천하대학에 입학 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5명의 아이는 이 학교에서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위권 학교에서 중하위권의 아이들인데 강 변호사라는 등장인물이 이들을 모아서 열심히 훈련하는 과정이 보여집니다.

저는 하나님이 사람을 훈련시킬 때도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이 예일대 교수일 때보다 지체장애우들과 함께 어울려서 지낼 때 하나님을 더 경험하게 된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계급장 떼고, 재산과 명예를 내려놓을 때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하다는 말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이런 것을 내려놓기 힘드니까, 아예 없는 자들을 들어서 쓰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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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hrl
    2010/01/18 04:1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만은 인정하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2. 2010/02/28 09:1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재밋는 연결이네여

이사야서 40장22절에는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다"(표준새번역)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읽는데 영화 '앤트 불리(Ant Bully)'가 생각났습니다. 그런 메뚜기와 같은 존재를 그렇게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가 앤트불리입니다.

이 영화를 본 후 쓴 감상문을 잠시 소개합니다.



앤트 불리(Ant Bully)는 3D로 제작된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3D로 볼 경우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화는 그 자체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만화 영화의 주인공인 루카스는 외톨박입니다. 루카스는 골목대장이 놀리고 괴롭히면 마당에 있는 죄 없는 개미집을 망가뜨리며 분풀이를 하곤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작은 개미가 되고 맙니다. 저는 이것을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없는 자의 세계로 가서 그들의 어려움을 현장 체험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카스는 개미들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힘있는 인간들이 얼마나 개미들을 못살게 굴고 괴롭히는지 그는 깨닫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인간이 개미를 괴롭힌다는 차원을 넘어 이 사회에서 힘없는 자들이 힘 있는 자들에게 개미 정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파워를 가진 자는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이 바로 파워의 달콤함임과 동시에 타락의 전조인 것입니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남다른 교훈을 얻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최대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얻는 교훈입니다.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상처와 아픔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도 보게 됩니다.

위 내용은 제가 몇 년 전에 영화 감상문을 적은 것인데 당시에는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의 약함을 보며 마음을 함께 하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최근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앤트 불리가 생각났을 때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됐습니다.

인간에게 작게 보이는 개미와 하나님께 메뚜기처럼 보이는 인간을 대비하게 되었습니다. 

루카스가 개미의 세계로 들어간 상황이 마치 예수께서 이 인간사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메뚜기처럼 본다고 했는데 그 메뚜기가 되어 살다가 그의 나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는 개미가 된 루카스보다 더 작아짐을 의미합니다.

메뚜기처럼 보였던 인간의 세상에서 오셔서 고통을 대신 받는 내용은 이사야서 53장에 나옵니다. 이미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그러한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몇 백년 전에 그러한 마음을 품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4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표준새번역)

예수님이 이 땅에서 활동하심은 이미 오래전에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겼던 인간을 위해 하신 가장 큰 은혜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의 몸으로 인간사에 자신을 던지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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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
감독 이준익 (2006 / 한국)
출연 박중훈, 안성기, 최정윤, 정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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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이 영화는 1988년 가수왕 최곤(가상의 인물. 박중훈 분)과 그의 매니저인 박민수(안성기 분)의 우정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였다.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 열연해 청룡영화제에서 나란히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인 왕년의 가수왕 최곤은 마약 사건과 연루돼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되는데 매니저 박민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최곤의 그림자가 되어 뒷바라지를 한다. 불러주는 곳이 없고 업소에서도 외면당한 가수왕 최곤은 강원도 영월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오후의 희망곡' DJ가 되는데 여기서 뜨기 시작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때 대형 기획사에서 계약을 맺으려 접촉을 시도하고 매니저 박민수는 스스로 물러난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최곤은 '형하고 헤어지느니 서울로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요즘처럼 각박한 사회에서 보기 드문 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스포츠 스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포츠 스타나 스포츠 에이전트들은 돈에 의해 만나고 돈에 의해 헤어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돈 문제로 헤어진다.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구대성 김선우 등 한국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항상 돈이 문제가 됐다.

'라디오 스타'의 최곤과 박민수는 돈 문제가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박민수는 최곤 몰래 동료 가수로부터 수천만 원을 빌려 썼다. 또 매니저 박민수는 가수 최곤이 재기할 수 있도록 기막힌 기획을 하는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둘에겐 신뢰가 있었다. '오죽하면 저럴까-'라는 이해가 있었다.

'스포츠 스타' '라디오 스타'처럼 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파트너에 대한 '상호신뢰' '동정심'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최곤 또는 박민수와 같은 파트너가 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살 맛이 날까. 우리에겐 박민수 매니저보다 더 성실하게 우리를 돕는 존재가 있다. 바로 성령님이다. 내가 잘못을 해도 탄식하면서 우리의 죄 뒤에서 우는 분이 있으시다. 그는 박민수 매니저처럼 몰래 돈을 빌려쓰는 분도 아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고 도우시는 분이다.

오늘은 왠진 성령이 오셨네라는 찬양곡이 생각나고 노래를 부르며 마음이 울컥해졌다. 감사의 눈물이 가슴에 흘려내렸다. [밝은터]

 

허무한 시절 지날때 깊은 한숨내쉴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나라 꾸게 하시네

억눌린 갖힌자 자유함 없는자
피난처가 되시는 성령님이 계시네
주의 영이 계신곳에 자유가 있다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나라 꾸게 하시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나라 꾸게 하시네
나라 꾸게 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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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내렸을 때 제1 목적은 도덕적인 이스라엘 사람을 만들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율법을 지킬 때 자신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질서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역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유대인에게 그리고 비유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알게 하고 자신이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고 완성시키러 왔다는 말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세의 나이가 120세가 되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으로 들어가지 못함을 하나님으로부터 통보받았습니다. 신명기 31장 초반부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걱정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31장에서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조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예수님을 강조하고 매주 그의 이름을 높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레위인들에게 7년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주라고 합니다. 이유는 역시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31:9-13)



7일마다 (때로는 더 자주)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대형 교회에서 중형교회에서 소형교회에서 가정교회에서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세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큐티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삶 속에서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기 쉬운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를 잊지 않아야 그가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시상식이 열렸다고 상상해 봅니다. 우리가 그 시상식에 수상 주인공을 초대해서 가운데 무대에 세워줘야 그가 수상자로 인식이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상식장 주변에서 서성 거리는 배우가 되겠죠. 그 배우는 이름이 불려져야 가운데 무대로 올라설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계십니다. 그럴 이유가 하등에도 없는데 사랑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드려야 그가 무대 가운데로 설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나님은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존재 자체로 영광스럽지만 하나님은 자녀로부터 영광됨을 칭송받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녀에게서 아빠는 최고야! 엄마는 최고에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최고입니다. 온갖 기적을 보이시고 배고플 때는 양식을 베푸시고 적들이 있을 때는 먼저 가셔서 그 적들을 해결해주신 분이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칭송은커녕 인식도 못하고 삽니다. 뛰어난 배우에게 상을 주기는커녕 그 배우가 누구더라?”라고 질문하는 자들처럼 삽니다. 배우가 눈앞에 있는데 뉘시더라?”라고 하면 그 배우가 얼마나 민망스럽겠습니까. 배우는 숨고 싶겠죠. 하나님도 백성이 인식하지 못하면 숨으십니다. 신명기 3116절 이하에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숨지 않으시도록 오늘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찬송해야겠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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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을 보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신명기 25장의 규정은 직접적인 적용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악인에게 40대 태형을 준다든가, 형제가 사망하면 그 아내를 다른 형제가 데리고 산다든가, 두 사람이 싸우는데 아내가 상대 사람의 음낭을 잡으면 손을 찍는다든가 하는 것은 오늘날 적용하기 어려운 규정들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나타난 정신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질서를 지키도록 하기 위해 세밀하게 준비한 규정들을 보면서 모세가 하나님이 얼마나 세밀한 분인지 알게 됩니다. 이곳의 율법들은 모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것들입니다. 기초를 위한 초등학문과 같은 것입니다.( 3:24).

21세기를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기 나오는 율법의 많은 부분을 따를 경우 무리가 생기게 됩니다. 상황에 맞게 변형하는 상황화가 필요하겠죠. 법의 정신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초등학문 또는 기초는 세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다녔을 때 글렌 스태슨 윤리학과 교수님이 해준 말이 기억납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이 있었는데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분야의 기초 과목을 들을 필요 없이 상위 과목을 들으면 졸업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학교 측은 그 학생이 여전히 기초 과목을 들어야 하는 규정 때문에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님은 규정의 원리(principle)를 적용해야지 규정을 그대로 율법주의적(legalism)으로 적용하면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논쟁 끝에 그 학생은 기초 과목을 듣지 않고 상위 과목을 곧바로 듣고 졸업을 할 수 있었고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법을 해석하는 변호사, 검사, 판사가 있는 것처럼 법은 멈춰져 있는 게 아닙니다. 상황에 맞게 제대로 해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그 원리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악인에게 태형 40대를 주는 것은 악한 행동에 대해 뉘우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여인을 남편의 형제가 돌보게 하는 것은 자칫 방황할 수 있는 여성을 보호하고 가족을 보호하는 법 정신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호의 개념이 강합니다. 어떤 주석가는 가족 재산의 보호라는 말도 하더군요.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질서에 대한 것입니다. 질서는 따라서 억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사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경험하게 하는 질서입니다.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질서가 아닙니다.

집행자
감독 최진호 (2009 / 한국)
출연 조재현, 윤계상, 박인환, 차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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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집행자로 인해 요즘 사형제도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데드 맨 워킹이라는 영화에도 이러한 주제가 다뤄지고 있죠.

법은 질서를 위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죄인에게는 적절한 형벌이 내려져야 질서가 잡힙니다. 그 질서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은혜와 자유를 경험하게 하고 죄를 짓는 죄인에게도 은혜와 자유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극악무도한 죄인은 오랫동안 감옥에서 살게 됩니다. ‘데드 맨 워킹이라는 영화에서 매튜라는 남자는 두 연인의 데이트 현장에서 강간을 하고 살인까지 한 극악한 사형수입니다. 그는 히틀러의 추종자이고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사형되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는 사형을 앞두고도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를 헬렌 수녀는 사형될 때까지 도와줍니다.


데드 맨 워킹
감독 팀 로빈스 (1995 / 미국)
출연 숀 펜, 수잔 서랜든, 조안 글로버, 레노어 뱅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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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헬렌 수녀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손가락질을 했지만 헬렌 수녀는 수모를 감당하고도 매튜를 끝까지 도왔습니다. 질서를 무너뜨린 자였지만 감방에서 강제로라도 질서를 지킬 수 있는 자였기에 헬렌 수녀님은 은혜와 자유를 경험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질서에 은혜와 자유가 있으면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지만 은혜와 자유가 없으면 그것은 사망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디트로히 본회퍼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에버하르트 베트게 (복있는사람,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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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신학자들이 질서를 위해 히틀러의 정치에 토를 달지 못햇을 때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준비했습니다. 이는 히틀러의 새 질서 위에 은혜와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신자였던 안중근은 왜 암살을 시도했을까요. 일본 제국주의의 질서 위에 은혜와 자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서 위에 은혜와 자유가 없으면 우리는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은혜와 자유가 없는 질서에 대해 문제 제시를 합니다. 질서 위에 은혜와 자유가 있으면 그것은 값진 일입니다. 헬렌 수녀님은 의미있는 일을 한 분입니다.

다시 신명기에 나오는 질서를 생각하게 됩니다. 특별히 25장의 질서에 은혜와 자유가 있나 생각해 봅니다. 의인에게 은혜와 자유가 부여되고 악인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고 죄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은혜와 자유가 있습니다. 질서 밖으로 빠져나와 혼란스러울 뻔 했던 남편 잃은 여자에게 은혜와 자유가 주어지며 음낭을 잡혀 성기능을 상실할 수 있는 남자에게 은혜와 자유가 있습니다. 죄를 졌지만 손을 찍힌 여인에게는 은혜와 자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질서는 수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형 제도는 사형수에게는 은혜와 자유를 빼앗는 질서입니다.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 국외정치인
출생 1889년 4월 20일
신체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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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히틀러나 이토 히로부미의 은혜와 자유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들도 질서 위에서 은혜와 질서를 누려야 하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많은 사람의 은혜와 자유를 빼앗았던 인물들이었기에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엄청난 파워를 지닌 자들이었습니다.

나영이를 괴롭힌 조두순은 그래서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합니다. 그는 12년 동안 감옥에서 살고 나온 후 다른 어린이들의 은혜와 자유를 빼앗을 가능성이 큰 사람입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잠재적인 피해자입니다. 질서(감옥) 안에서 그도 은혜와 자유를 체험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교화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그를 품을 헬렌 수녀님과 같은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에 은혜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의 파워나 영향력이 엄청나다면 예외적으로 그들에게서 은혜와 자유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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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노끼
    2009/11/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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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서 ,율법, 윤리등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고 그것을 잘해석하고 원리를 잘 이해한다면 조금은 덜 다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사람을 귀히여기고 사랑하며 존중하며 아끼고 살아야 되는지 알기쉽게 분명히 말씀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 2009/11/09 18: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사람을 귀히 여기시려는 마음, 본받고 싶습니다...

집행자
감독 최진호 (2009 / 한국)
출연 윤계상, 조재현, 박인환, 이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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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문자 그대로 봐야 할 것이 있고 성경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분별력이고 그 분별력은 성령께서 갖도록 하십니다.

신명기 22장은 혼외의 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벌을 내리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결혼 전에 남녀가 육적인 사랑을 나눴을 경우에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22장에 따르면 순결한 상태에서 결혼하지 않을 경우 돌에 맞아야 합니다. 결혼 생활 안에서의 섹스가 아니면 대체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이 신명기 22장입니다.

이 율법대로 한다면 21세기를 사는 사람 중 살아남을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들키지 않을 경우 죽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들켰을 경우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처녀가 아닌 여자에 대해 남자가 처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약혼한 남자와 동침하면 남자와 여자 모두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유부녀와 동침하면 역시 둘다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강간을 한 남자는 죽어야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결혼의 신성성인 것 같습니다. 결혼생활이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섹스는 가하되 모든 게 유익하지 않고 오직 결혼 생활 안에서의 섹스만 귀중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21세기 상황에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사역했을 때도 결혼 생활 밖에서의 섹스가 우상숭배의 문제로까지 연결됐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성생활이 문란한 여자를 사람들이 돌려치려하자 네가 죄가 없으면 그렇게 해보라고 했고 사람들은 돌을 던지지 않고 물러섰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이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며 보내줬습니다.

돌로 쳐서 죽이면 회개할 기회가 없고 새 삶을 살 기회를 잃게 됩니다. 윤계상, 조재현 씨가 출연하는 영화 집행자 2009 115일에 개봉된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 시사회를 본 블로거들의 글을 보면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이야기를 필름에 담았다고 합니다.

흉악한 범죄자였지만 20년 동안 교도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좋은 사람이 됐는데 사형을 당하는 상황에 그들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는 반드시 주어져야 합니다. 흉악한 살인마가 무기징역을 받았어도 그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신명기 22장을 문자 그대로 보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예수 복음은 그런게 아닙니다. 따라서 22장을 문자 그대로 보지 않고 뜻을 보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서 뜻은 결혼 생활의 신성함입니다. 결혼 생활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과의 결합(결혼)이 깨지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결합을 깨는 성적 문란의 분위기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적 문란을 바울은 경고했던 것입니다.

신명기의 저자로 여겨지는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결합을 깼던(우상을 숭배했던) 민족이기에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결국 하나님과의 결합을 깨지 말 것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것을 깨는 것은 나쁜 일이기에 돌을 던져 죽일 정도로 심각하게 다뤘던 것입니다.

결국 결혼 생활을 깨지 말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깨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만큼은 깨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기회를 주시고 신뢰 회복을 위해 인내하시는 분입니다.

The Inner Workings Of A Groom's Mind
The Inner Workings Of A Groom's Mind by Ioannis P. Skaltsa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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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
감독 홍기선 (2009 / 한국)
출연 정진영, 장근석, 신승환, 고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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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조중필 사건과 관련된 영화가 제작돼 화제가 됐습니다. 조중필 사건은 이태원에 있던 패스트푸드점에서 대학생 조중필 군이 한국계 미국인 명에게 피살된 사건입니다. 명의 피의자가 있었고 하나가 죽였음에도 한미 협정에 따라 모두 무죄로 석방되는 억울한 사건이었습니다.

조중필 군의 가족 그리고 한반도는 살인자를 모른 아까운 젊은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런 경우 신명기 21장에는 암송아지의 피를 뿌리며 죄를 이스라엘에 머물지 않도록 명령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유대인들의 전통이었습니다. 동물의 피로 죄를 씻어내는 일종의 제사였습니다.

성경에는 조중필 못지않은 억울하게 죽은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그는 나무에 못박혀서 죽었습니다. 신명기 2122-23절을 보면 나무에 매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식했고 그렇게 추앙되던 예수는 나무에 매달려 죽었을까요. 하나님은 그러한 죽음을 허락했을까요. 이는 그러한 역사를 통해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풀렸음을 알리는 일입니다.

죽을 죄를 범한 인간이 더는 나무에서 죽는 저주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억울하게 당한 죽음, 억울하게 잡혀서 종이 되는 , 미움을 받는 아내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억울한 등에 대해 측은지심을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에 대한 원한은 땅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대신 짊어지고 나무에 매달린 자가 예수인 것입니다. 모든 억울한 자뿐만 아니라 크게 죄를 지은 자들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속죄라는 기독교적인 표현입니다. 대신 죄를 짊어진다는 의미죠.

조중필 군의 억울함을 예수께서 지시고, 그를 죽인 두 한국계 미국인도 예수께서 그 죄를 지시고,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이의 죄도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죄인인지 알아야 죄사함이 있겠죠. 죄인이 없는데 어떻게 죄를 사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거짓말을 했던 두 명 중 한 명은 죄사함을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중필 군의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나님은 아픈 마음이 있는 자, 큰 죄를 지은 자들을 모두 품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 주셨고, 다 품으셨고, 다 짊어지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라는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이 복음성가를 R&B 스타일로 하면서 랩을 넣는다면 이렇게 불러야 할 것입니다. “나 자유 얻었네 (다 주셨기 때문에) 너 자유 얻었네 (다 품으셨기 때문에), 우리 자유 얻었네 (다 짋어지셨기 때문에)”

사단의 지휘하에 진행됐던 모든 일들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사건 이후에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과 능력을 사용하느냐입니다. 이미 사단의 활동을 제한한 후이지만 우리가 예수의 이름과 능력을 무시하면서 살면 사단은 여전히 활개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집중해 예수를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과 능력은 크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기적의 증표입니다.

그 예수가 단순히 선생님이거나 선각자였다면 우리는 자유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기적이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자유를 주시려는 분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결박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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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뚜기
    2009/10/29 16:5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예수님이 단순히 선생님이나 선각자라면 우리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는 말씀이 가슴에 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셨다는 그것이 기적이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2. 밝은터
    2009/10/30 10:5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반갑습니다 ^^



2009년 9월9일자 미주 중앙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미주 중앙일보에는 2주마다 칼럼을 연재합니다. 글을 쓸 수 있도록 격려해주시는 안유회 미주 중앙일보 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더 큰 크기로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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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네 번째 시간입니다.


백 투 더 퓨쳐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1985 / 미국)
출연 마이클 J.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리 톰슨, 크리스핀 글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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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주신 법칙들을 지키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법칙들을 지키는 분은 교회에나 사회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킴으로써 약속된 땅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며 공부함으로써 약속된 땅을 향한 방향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지금 약속된 땅을 향하는 길에서 내비게이터(GPS) 망가진 상태입니다. GPS 바로 하나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그들은 하나님을 없게 됩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죠.

하나님은 후세의 이스라엘 민족과 타민족에게서 비슷한 것을 더욱 자주 보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주신 것이 내비게이터를 따라가지 않고 곧바로 약속의 땅으로 있는 타임머신 비슷한 것을 허락하셨는데 바로 예수입니다.

영화 백투더퓨처 보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주인공들이 다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내비게이터를 따라갔던 이스라엘 민족과 타민족이 백투더퓨처에 나오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있도록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 선물을 하신 것이죠.

예수가 없다면 이스라엘 민족처럼 외지에서 40 동안 방랑하게 됩니다. 인간이 40 동안 방랑하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당연한 같습니다.

하나님은 해결방법을 내놓으셨는데 바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율법이 빛을 비추는 손전등이었다면 예수님은 자체입니다. 자체를 인간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거의 모든 땅에 빛이 비쳤지만 빛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기독교인이 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빛이 비친 곳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굳어져서 빛을 피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손전등을 무시했던 상황과 별반 다를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빛은 마틴 루터 주니어, 간디, 테레사 수녀, 수많은 순교자들에게 비쳤습니다. 그들은 빛의 힘으로 세상을 밝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빛을 피하려고 합니다. 나에게 강력하게 비추고 있어도 나는 손으로 빛을 가립니다. 제발 나에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2009/09/09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 승패를 초월하는 길
2009/09/10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 순종하는 배우
2009/09/11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3)] 영화 '해운대' 대피령 왜 못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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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 Nebo (2007-05-821)
Mount Nebo (2007-05-821) by Argenberg 저작자 표시

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벗어난 이후 40 동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이집트에서의 생활이 낫다는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멋지게 홍해를 가르고 풀려났는데 그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져 갔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도 나타났습니다. 인내가 부족했습니다. 멀리 내다보지를 못했습니다.

영화 해운대 보면 지질학자인 박중훈(연기자의 본명) 정부 관계자에게 쓰나미 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해운대에서는 국제 행사가 열리고 이곳에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기 때문에 정부 관계자는 그의 의견을 무시합니다. 지금 당장 이익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나 다른 민족 대부분은 그렇게 근시안적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도 그런 모습입니다. 약속은 분명히 있는데 오늘 벌어진 일로 속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집니다. 약속이 있는 것을 자각해야 하는데 순간만큼은 쉽지 않습니다. 다시 약속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주신 생명의 약속을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이익과 불편을 생각하지 않고 평생의 생명을 구해주시겠다는 그의 약속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원하면 원하는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자녀가 원하는데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준비가 되어 있기에 지금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그랬던 같습니다. 아직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40년이란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우리도 어쩌면 약속을 받고난 40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가 준비가 되어 있기에 주시지 못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이 주신 나라입니다. 40 동안 헤매도 결국에는 약속의 땅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약속을 움켜쥐고 사는 오늘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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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Cassandra talking version)
Exodus (Cassandra talking version) by Iguana Jo 저작자 표시비영리

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신명기 1장부터 440절까지는 역사의 회고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불만만 터뜨린 것에 대한 결과가 소개됩니다. 그러나 중간에 순종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대본에는 결국 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배우가 반발하는 바람에 늦춰진 것을 보게 됩니다. 배우가 대본 내용에 불만을 품고 연기를 하지 않으면 영화는 제작될 없습니다. 소위 말해 엎어지기도 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지 않으면서 엑소더스라는 영화가 엎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주어집니다. ‘엑소더스제작자인 하나님은 마치 이경규 씨가 영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엑소더스영화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렸습니다. 40 이상 걸렸습니다.

배우는 제작자의 기획에 따라야 합니다. 물론 작은 부분에서 의견을 제시할 있고 계획의 변동이 있을 있지만 제작자의 뜻에 따르는 현명합니다. 엎어져도 제작자의 책임이고 제작자가 알아서 일이기에 배우는 대본을 해석하고 연기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B.C. 1447 쯤에 이집트를 나와서(출애굽을 해서) ‘엑소더스제작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다가 결국 40년이 걸린 BC 1,407 쯤에 광야생활을 끝맺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있었다면(in the midst of them),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더욱 앞당겨질 있었던 영화 엑소더스였습니다.

우리의 삶을 봅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습니다. 무언가 불안하고, 무언가 부족하고, 무언가 완벽하질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외칩니다. “이게 뭡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천지창조 영화의 엔딩 장면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이 하나님이 약속한 나라였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약속의 땅은 천국입니다.

길로 가는 길이 불안하고 불만스럽겠죠. 하지만 그를 믿으면 나라로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화 천국 주연, 조연, 엑스트라 배우입니다. 좋아도 싫어도 역할을 감당해내야 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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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Old Testament Exhortation on Behalf of the Immigrant
Old Testament Exhortation on Behalf of the Immigrant by Edu-Tourist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승리와
패배는 사실 크게 중요한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 그것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함께하심은 승리와 패배를 초월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상황을 초월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이길 방법은 마인드컨트롤(심리조절) 아니라 바로 주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스테반 집사, 바울 사도, 요셉은 어떻게 고통을 이겨냈을까요?

그들의 아름다운 품성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 함께하셨기에 어려움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이겼다고 쉽게 말할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승패를 초월했다고 말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승패가 결정 인생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를 작가는 하나님입니다.

On the Road Manuscript, #3
On the Road Manuscript, #3 by Thomas Hawk 저작자 표시비영리

배우는 영화의 결과를 알고 연기를 합니다. 우리도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배우가 열심히 연기하듯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이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와 함께한 승리 또는 패배가 되어야 합니다. 패배도 대본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승리와 패배가 아니라 주의 함께하심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승리를 거둘 하나님이 함께하신 전쟁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의 전략이 좋았다고 우쭐댑니다. 전쟁에 나가서 패할 하나님이 함께하신 전쟁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신 전쟁에 나갈 때는 승패와 상관없이 만족함이 있습니다. 감사함이 있습니다.

인생의 전쟁터에 우리는 던져져 있습니다. 승리를 하고자 발버둥을 칩니다. 승리를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승리라고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말은 전쟁에서 하나님이 있으면 승리하고 없으면 패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있으면 승패를 초월한다는 말입니다.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까? 하나님 탓입니까? 해고를 당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해고가 아니라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고통이 가중되는 일입니다.

남편에게서 구타를 당했습니까? 하나님 탓입니까? 구타를 당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구타가 아니라 예수님의 심정을 아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구타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안다는 , 그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노예처럼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탓입니까? 노예처럼 살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건 노예 생활이 아니라 요셉의 심정과 그의 신실함을 있게 해줍니다. 요셉의 심정을 안다는 , 그의 신실함을 배우는 그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먹고 사는 힘듭니까? 하나님 탓입니까? 먹고 사는 힘들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자체가 힘들어지지 않고 오히려 먹지 못하는 아프리카인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가난한 자들, 먹는 자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신명기는 가난한 , 소외된 자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병이 들어 힘듭니까? 하나님 탓입니까? 병이 들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이제 얼마 있으면 내가 하나님 나라에 있구나 하고 기쁨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 나라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해운대
감독 윤제균 (2009 / 한국)
출연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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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 있어도, 패배의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우리를 승자로 만들게 됩니다. 영화 해운대에서 많은 사람이 쓰나미로 죽습니다. 많은 사람이 쓰나미에도 살아납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괜찮습니다. 죽으면 하나님 나라요 살면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자가 있도록 한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결국 인생은 뻔한 결과를 알고 뛰는 경주입니다. 경주의 중간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느냐 하시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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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h
    2009/09/09 07:1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2009/09/09 12:2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에 위로가 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Hope(호읍)이 없으면 호흡이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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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 씨(이영애 분)는 감옥에서 빨리 풀려나기 위해 신실한 신앙인인 것처럼 위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 후 자신을 도왔던 목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나 잘하세요.” 감옥에서 형을 치르는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그리스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친절한 금자씨
감독 박찬욱 (2005 / 한국)
출연 이영애, 최민식, 권예영, 김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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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해 용팔이로 불리는 김용남 씨와 살인마 강호순이 요즘 성경에 빠져 산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 “쇼 하고 있네~~” 이들은 영화 속의 금자 씨처럼 쇼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진심일지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는 일입니다
.


본인들도 워낙 급하다보니 이게 신앙인지 희망사항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실까? 용서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실한 스데반 집사는 예수를 전한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축출에 나섰던 자가 바로 바울입니다. 오늘날 사도 바울로 알려진 그 바울은 예수쟁이들을 무척이나 싫어했고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는 사람이 생기도록 한 원인제공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크게 쓰셨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개하자 당시 사람들도 쇼 하고 있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바울을 슬슬 피해 다녔습니다.

강호순도 용팔이도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용서를 받고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댓가만큼은 톡톡히 치러야 합니다.

사랑은 받고 구원은 받겠지만 정의를 위해 치러야 할 댓가가 분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것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바울도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강호순이 용팔이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 있는 것입니다. 강호순의 경우에는 평생 감옥에서 무기수로 살면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인 것입니다. 사형을 당해버리면 어떻게 대가를 치릅니까.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다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래야 합니다.


밀양
감독 이창동 (2007 / 한국)
출연 송강호, 전도연, 조영진,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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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에서 남자 아이를 유괴해 죽인 후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 아이의 엄마(전도연 분)에게 나는 이미 용서 받았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분노했습니다. 이유는 정의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대가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은 자, 사랑의 빚을 진 자는 그에 대한 정의의 빚을 진 자입니다. 빚 진 채로 주님 앞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빚을 갚기 전에 우리는 빚을 졌는지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받아들이며(157),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그의 약속을 확인시켜주는 게(158)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인이심을 받아들인 자는 믿음을 갖게 되며 기쁨과 평화를 그 죄인에게 주실 것이고(1513) 성령의 능력으로 치러야 할 대가를 감사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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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1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은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잘못 이해하면 오류에 빠질 있습니다. 권세를 가진 히틀러나 김정일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라는 영화를 보면 히틀러 암살 작전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만약 로마서 131 내용을 잘못 이해한다면 암살 작전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히틀러나 김정일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이라면 그것은 따르지 말아야 것입니다.
 

작전명 발키리
감독 브라이언 싱어 (2008 / 독일, 미국)
출연 톰 크루즈, 케네스 브래너, 빌 나이히, 톰 윌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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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34절을 보십시오. 134절에는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권세를 행하는 사람의 정의라고 있습니다. 히틀러나 김정일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일부 권세자들에게만 유익을 인류적으로 또는 특정 인종에게 아니면 자신의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지도자가 아닙니까.

이들 권세에 복종할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권세는 로마의 권력인데 당시 상황에서 지배를 받았던 유대인들은 그래도 로마가 법치국가였음을 인식하고 있었고(해방을 원하긴 했지만) 상황에서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기독교 선교에서 중요한 일임을 사도 바울은 알았던 같습니다.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 국외정치인
출생 1889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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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히틀러나 김정일의 권세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세는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정부는 독재 어쩌구 하는 말이 있어도 여전히 법치국가이고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등을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력이라고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이구요. 이런 권세 앞에서 조세를 바치고 양심있게 살고 두려워하는 것은 성경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희한하게 김정일을 찬양하고 권세를 인정하고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라고 몰아세우는 세력들이 있는 같습니다. 독재자 중의 독재자, 인민을 배고프게 하는 독자자가 대한민국 땅에서 칭송을 받는 다는 자체가 존경해야 이를 존경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김정일 (金正日) / 국외정치인
출생 1942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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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 대한민국 정부에 불만이 있을 있고, 비판을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러나 해야 일은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시대를 사는 시민의 몫입니다. 또한 믿는 자의 몫이기도 하구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같아요. 담임 목사님들이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리더가 여러분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인지를 먼저 파악해야하겠습니다.

조금
부분이 있어도 전반적인 뜻이 유익을 주려고 하는 자라면 그의 권세에 복종을 하는 필요합니다. “나에게 유익이 없으니 나는 반대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유익은 모든 사람에 대한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반적인 유익을 말합니다.

어떤 목회자가 있는데 하는 일이 온통 자기 유익만 구하고 다른 사람을 헐뜯고 모든 잘못된 일에 발뺌을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에게 순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로마서 131 말씀을 들고 복종을 강요합니다. 아주 위험한 목회자들입니다. 그들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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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3 19: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요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교리 강좌를 읽고 있는데, 거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히틀러가 권력을 잡던 시기에 독일의 독실한 복음주의 신앙인들이 "그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이라는 말을 하며 히틀러를 찬양했다고 하더군요... 독일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라고...

    섭리는 늘 자기 좋을 대로 오해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죠
    • 밝은터
      2009/06/23 20: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죠...지금도...
  2. 2009/06/23 22:0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신앙인들도 로마서 13장의 복종의 개념을 모르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대로 정의를 내려 주신 것 같네요.
    공감합니다.
    • 2009/06/24 10: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


오늘 지인의 따님이 결혼 축하연을 열었다
. 그리고 저녁에는 장모님의 환갑 잔치가 열렸다. 두 행사를 하루에 참가해 바쁜 하루였지만 주인공들이 기뻐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 지인의 따님은 내가 만든 동영상과 아내가 작곡한 노래가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인께서 행사가 끝나고 전화로 말씀하셨다. “부부가 둘 다 Happy해요…”

이 행사가 끝나고 오후에는 장모님의 환갑 잔치가 조촐하게 열렸다. 우리는 모여서 담소하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외삼촌께서 꿈꾸는 자만이 죽지 않는다는 덕담을 해주셨다.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모님께서
나 오늘 너무 Happy라고 말씀하셨다.

주인공들이 기뻐하는 날이었다. 그것으로 기뻤다.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그들이니까 그들은 기뻐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었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내 결혼식 때가 그랬을 것이고 대학 졸업식 때가 그랬을 것이다. 또 곧 있을 나의 대학원 졸업식 때는 내가 주인공이다.

김옥빈 / 국내배우
출생 1986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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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카페 …"흑설" 김옥빈 공식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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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은 특별 대접을 한다. 그게 나쁜 게 결코 아니다. 주인공은 대접 받아 마땅하다. '박쥐'의 여주인공 김옥빈이 칸느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그는 주인공으로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있다
. 바로 하나님이다. 그는 주연을 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그 주인공이 나에게 어떤 날에는 주연 자리를 살짝 빌려주기도 한다. 그날 만큼은 내가 주인공인 것이다. 얼마나 나누기 좋아하는 분인가. 자신이 365일 주인공이 되고 싶을텐데 사람마다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신다.

주인공이 되어보면 인생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조금은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그런 기회를 허락하는 것 같다. 그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하기 위해서.

그런데 우리는 때로는 주인공들을 조연 취급할 때가 있다. 주인공이 즐거워야 하는데 조연들이 그 주인공을 가릴 때가 있다. 나도 그런 잘못을 할 때가 많이 있다. 주인공을 철저하게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훈련이 필요하다.

오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결혼 축하연에서 청중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박수를 보내고 반응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주인공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반응이 좀 더 있었다면 주인공들은 더 기쁘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훈련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밥 먹기에 바쁘고 자기 얘기하기에 바빴던 분들은 주인공을 그만 까먹고 말았다.

환갑 잔치에서도 약간은 주인공이 밀려난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처외삼촌께서 적절하게 멘트를 잘 하셔서 어머니가 주인공이 되게끔했다.

죽는 날까지 훈련이다.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게끔 하는 것도, 사람이 주인공이 됐을 때 주인공 대접을 하는 것도 모두 훈련이다. 그래도 주인공들이 해피했다니 다행이다.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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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념
    2009/05/1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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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주인공을 기쁘도록 '행복의 챤스'를 만들어내시는 밝은터님은 토요일 신부가 자란 홈타운의 결혼축하연을 흐뭇한 기쁨의 자리로 만드셨읍니다. 졸업식, 언제인지 일러주실 수있지요? 이제 당신의 차례 입니다.
  2. 양념
    2009/05/17 17: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골을 넣은 선수 못지않게 골을 넣을 '챤스'를 확실하게 한 선수에게 저는 더 큰 박수를 보낸답니다.

    주인공들을 위해서 '행복의 챤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수록 더 밝고 기쁨이 가득 차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3. 2009/05/18 09:0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앞으로 더 많은 주인공대접을 해 주어야겠어요.
  4. 2009/05/18 09: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양념님 Grace님...그런데 주인공 대접을 하기 위해 얼마나 나를 깎아야 하는지...어시스트하는 선수는 그다지 칭송을 받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어시스트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한 박수를 보냅니다.
  5. 밝은터
    2009/05/19 19:0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결혼 피로연에서 신부의 아버지께서는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시면서 우리 딸이 자라는 모습을 여러분이 지켜보시고 성장에 기여를 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그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6. 밝은터
    2009/05/20 22: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성경: 마가복음 435-41절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20065월 영화 다 빈치 코드가 세상에 선보이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 빈치 코드라는 책과 영화의 주제는 결국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천사와 악마'라는 비슷한 종류의 영화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2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기독교가 헛된 종교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을 화해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다 빈치 코드의 저자인 댄 브라운은 기독교는 조작된 종교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브라운이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혹은 믿지 않는 것이 단순한 감정이나 우리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충실하기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실제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2천 년 전에 잠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해 이적을 행사하고 가르침을 주셨던 그분의 제자들도 믿지 않았으니 2천 년이 지난 후의 사람들이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댄 브라운 (Dan Brown) / 작가
출생 1964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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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41절을 보십시오. “저가 뉘기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라는 의미입니다. 아니 제자들이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입니까이 말을 하기 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과 병고침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쫓아다녔던 것일까요? 그런 능력을 어디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부활하시자 제대로믿기 시작했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저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라고 말하기에는 현실성과 역사성이 너무나 뛰어납니다. 증인들도 너무나 많았고, 그가 선보이신 이적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2천 년 후에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성인이 아니다


예수는 그저 성인이 아닙니다
.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정신나간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저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엄청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댄 브라운이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엄청난 권세를 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댄 브라운의 결론은 예수는 미치광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전체 글의 맥락을 보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 부처, 공자, 마호메트 중 한 명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지 미치광이였는지의 문제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시고,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신 후에 결정을 해야 합니다. 적당히 교회에 다니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신분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
감독 론 하워드 (2009 / 미국)
출연 톰 행크스, 이완 맥그리거, 아옐렛 지러, 스텔란 스카스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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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용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미치광이인가라고 선택을 해야 한다
. 나에게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 그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 믿음을 갖고 나는 그의 가르침을 매일 배워야 한다. 그의 뜻을 따라야 한다.

 

Thinking of Jesus


예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곧 참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런 지식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어느 곳을 가든지 치유, 화해, 새로운 삶과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는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현실에 적절하고자 하며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은 마침내 사라져 버릴 것이며, 오직 우리의 유일한 소원은 우리의 온 존재를 다해 우리의 형재 자매들인 온 인류에게 당신은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깊은 내면을 만드셨으며, 어머니의 태에서 당신을 조성하셨습니다.”(시편 139:13참조)라고 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예수의 이름으로,’ p.29-30)>


헨리 나우웬 (Henri Jozef Machiel Nouwen) /
출생 1932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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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8 - [연예인] - 주지훈과 음식을 나누실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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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 Sunshine (2007) is famous for its awards at the Festival de Cannes in 2007 and other film festivals. Jeon-Do Yeon, who played the newly widowed Shin-ae, won the best actress trophy at the 60th Cannes festival. Secret Sunshine was also a winner of best feature film and Jeon-Do Yeon received a best actress nod from Asia Pacific Screen Awards. In addition, this movie won the best film awards in virtually all Korean film festivals.

Masterfully written and directed, and uniquely photographed, Secret Sunshine expressed the hope and salvation that can be found when life is painful because of continuous tragedy. This film also talked about the forgiveness of God and people. Lee Chang Dong, director and writer of this movie, said in an interview, "In a vast sense, I wanted to express what love is and this movie could be a melodrama in a sense. Without love, we can't talk about hope and salvation." Lee acknowledged that Secret Sunshine had no apparent genre. This movie is not a movie about religion, but it drew attention from many Christians in Korea because there were a lot of Christian elements in the movie.

밀양
감독 이창동 (2007 / 한국)
출연 송강호, 전도연, 조영진,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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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urning point in Secret Sunshine comes when Jun, Shin-ae's son, is kidnapped and killed. The kidnapper asks for money because he presumes that since she can buy land, she must be rich. Her lie causes much sorrow.

Shin-ae becomes a church-goer and wants to forgive the murderer. She decides to visit her son's murderer in prison and forgive him. Jong-chan, Shin-ae's guy friend, says, "Just forgive in your heart. Do you have to go to the prison?" Her church fellows cheer for her and say they will pray for her. Her pastor agrees with what she wants to do. That is a sad moment because it is too early for her to do an action. The result of the meeting with the murderer is another turning point in Shin-ae's life. The murderer says with a peaceful smile that he has already been forgiven by God. This sparks anger in her toward God. She says, "How could You forgive the man before I forgive?"

She begins to fight against God. She looks up to the sky and proclaims, "I won't lose to You." She becomes a snare, her heart is a trap, and her hands are chains. It is more bitter than death. She becomes crazier and crazier and is sent to a mental hospital. On the day Shin-ae is discharged from the hospital, she goes to a beauty shop and sees a familiar face. The daughter of her son's murderer works in the shop and cuts her hair. The murderer's daughter has helped kidnapped Shin-ae's son. While she cuts Shin-ae's hair, the protagonist can't understand what's going on and gets out of the shop quickly.

It is difficult not to talk about Jong-chan in the movie. Jong-chan does his best to be by Shin-ae's side. Although Shin-ae doesn't care about him at all, he is beside her all the time. Shin-ae leaves church quickly, but Jong-chan, who started attending church because of Shin-ae, stays there because he feels peace with God. Lee Chang-dong, the director of Secret Sunshine, says that Jong-chan is like Milyang( secret sunshine), the rural city or vice versa. He seems to "be too secular and frivolous, but he is always two steps behind her and takes care of her. Milyang is like him." Mr. Lee adds, "Someone joked that Jong-chan could be an angel. I think that he could be the angel. Who knows? We can't say for sure that there is no angel."

If there is a person like Jong-chan who forever accompanies his lover's twists and turns, we can defend ourselves against the overpowered. The life of Shin-ae is full of meaninglessness. Her husband died after he cheated on her, and her only son was killed cruelly by a murderer after she moved to her husband's hometown. And her soul was damaged because she learned Christianity in a wrong way—and that makes her crazy, literally. It is too easy to say that her life is filled with meaninglessness.

Does she still have hope in her life? Can she find meaning in her life? The final scene gives us hope. Shin-ae tries to cut her hair by herself: we walk our life's journey by ourselves. She, however, realizes that it is hard to do it by herself, and we know that we can't do everything by ourselves. We see Jong-chan holding the mirror for her while she cuts her hair. That's her hope. She has Jong-chan beside her and he is willing to help her in whatever situation she is. As I mentioned earlier, Jong-chan is like an angel for her. If we feel that an angel is always beside and behind us, we can find joy in life even though we face adversity in our lives.

Secret Sunshine was a hot topic of conversation in Korea. It is like Da Vinci Code. While Da Vinci Code helps us discuss the early church history, Secret Sunshine prompts us to deal with life's messiness and find meaning when life seems unbearable. With a shallow interpretation of the movie, people misunderstand Christianity and its theology. With a deeper interpretation, this movie will help us see beneath the surface. Some people say they quit attending church worship service after they watched Secret Sunshine, and Lee Chang-dong responds by saying, "They were already anti-Christ before they watched this movie. Secret Sunshine is a life story of a woman and we can interpret our life through Shin-ae's life. [Written by B.K. Park, Webservant of JesusInCulture.com]


밀양
감독 이창동 (2007 / 한국)
출연 송강호, 전도연, 조영진,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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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 9

율법이 강조되는 사회

율법이 강조되면 사회가 건강해지고 룰을 잘 지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반대입니다. 인간이 율법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그 사회에서 떠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인데 정작 율법만 주인노릇하고 하나님은 없다니 말이죠. 사람이 자신의 의로 하나님께 이르려고 하니 더욱 힘들어집니다. 결국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고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려고 하는 것에서 한계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한국은 율법을 강조하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유교의 영향도 있고 기독교가 들어가서 율법을 많이 강조하면서 유교와 기독교가 합세(?)해 율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긍정적인 면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결과는 부정적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율법이 강조되면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게 되고 그러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율법으로 하나님께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의해 의에 이르는 자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의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다고 지적합니다. 율법으로 의에 이르는 것은 내가 뭔가를 해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칭송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9장 후반부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은 이스라엘 독자들에게 쓴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평생을 율법에 의지하여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한 것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율법을 잘 지킨 사람만을 칭찬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는 비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924절에 하나님은 비유대인들의 하나님이기도 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 것

사도 바울은 로마서 내내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은 사실 마이너이고 정말 중요한 메이저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고 그를 인정해야 하고 그가 꾸준히 참으시고 너그럽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하면 항상 나오는 말. “그래도 율법은 중요하다. 계율을 지켜야 한다.” 맞습니다. 틀린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질서를 위해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사도 바울 말의 핵심입니다. 계율을 지키고 룰을 지키고 질서를 지키는 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음으로 몰고가는 경향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잘 지키면 믿음이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믿음은 믿음으로 설명해야

믿음은 믿음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행위와 이론으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믿음은 믿음입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고 하면 그 믿음은 이론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체험과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인간이 연약하기에 설명을 하고 율법도 만들어 시험도 하고 하지만 사실 믿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믿음은 제한되게나마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
감독 론 하워드 (2009 / 미국)
출연 톰 행크스, 이완 맥그리거, 아옐렛 지러, 스텔란 스카스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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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사와 악마

천사와 악마라는 영화가 개봉됩니다. ‘종교와 과학의 대결이라는 전체 그림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밀결사대와 교황청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교황청이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교회는 역사를 통해 너무 많은 틀을 만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율법을 만들었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봤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문자 안에 담긴 비밀, 문자 안에 있는 뜻, 문자 안에 있는 믿음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단으로 몰렸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가르쳤을 때 반드시 적대적인 그룹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알려줬을 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천사와 악마는 그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게 교회의 잘못은 아닙니다. 어둠의 영이 강력히 역사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자비하신 하나님, 은혜로운 하나님, 참으시는 하나님을 전하지 못한 것은 기독교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너무 율법으로 묶어둔 것이 실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 하심을 우리가 너무 제한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궁금점과 인생의 의문점을 해결해주셨기 떄문입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 그 말이 왜 맞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논쟁 속에서도 여전히 '오직 예수'가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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