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 목사는 한국 21세기 초반부에 한국 기독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개신교 목회자다. 나는 한때 그의 부흥회 CD를 구입해서 들을 정도로 그의 능력 있는 설교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동안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했기에 속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잔잔한 감동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능력은 교만으로 이어졌다. 이는 인간이라면 다 경험하는 일이다. 어느 분야에서 잘 알려지기 시작하면 교만은 내가 아무리 거절해도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 있는 한 교만은 계속 이어진다. 큰 자리에 올랐는데 교만하지 않다면 오히려 사람답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이 영향력 있는 글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미국 유명대학의 교수 자리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공동체로 자리를 옮겼기에 가능했다.
어느 때부터 전병욱 목사의 설교가 듣기에 거북스러웠다.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조소섞인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그의 설교를 듣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와 관련된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부터 그의 설교를 열심히 들었다. 설교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남을 지적하지 않았다. 설교가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설교를 정기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스캔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날 설교가 뚝 끊겼고 얼마 후 그와 관련된 스캔들이 터져나왔다.
스캔들은 이미 교회 내와 일부 목회자들 사이에는 알려진 사실이었다고 했다. 적어도 1,2년은 그런 상황에서 설교를 했던 것이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채 강단에 섰던 것이다. 그 기간의 설교를 일부 되돌려 들었더니 영성있는 설교가 많이 있었다. 그를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든 생각은 영향력 있는 설교가들이 ‘죄인 의식’을 갖고 설교를 한다면 얼마나 강력한 설교가 될까 하는 것이었다. ‘잘난 맛’에 설교를 하면 귀에는 달콤해도 영혼을 움직이긴 쉽지 않다. 삶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물론 전병욱 목사처럼 스캔들이 있었다면 목회를 중단하고 회개와 용서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의 사건을 보면서 ‘죄인 의식’이 목회자들에게는 항상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의인이라 강단에 서는 게 아니라 죄인이지만 용서 받고 강단에 선다는 마음이 없이는 성도들의 영혼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들고 대형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지만 그 중에 삶이 송두리채 바뀐 성도들이 주를 이루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자기 잘난 맛에 했던 설교 그리고 죄인 의식을 갖고 용서 받은 죄인이 하는 설교는 의미가 크게 다르다. 언젠가는 ‘겸손해진’ 전병욱 목사가 다시 강단에 서서 주께서 얼마나 용서를 잘하시고 얼마나 우리를 보고 마음 아파하시는지를 설교해주면 좋겠다. 그는 분명 하나님이 쓰신 목회자이고 주께서 주신 달란트가 있는 목회자였다. 그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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