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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설을 품고 사는 지혜

밝은터 2010. 1. 22. 04:53

Elvis Costello
엘비스 코스텔로

몇 년 전 나는 구약성경의 전도서(Ecclesiastes)에 심취해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지혜자'는 인생의 허무함과 모순성을 강조하는데 21세기에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 이성주의자와 종교의 근본주의자는 이 모순과 역설을 정리하고자 오랫동안 싸웠다. 그러나 해답을 얻지 못했고 '인생은 모순'임을 처절하게 느꼈다. '인생의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상황이 됐다.

전도서에 심취했던 당시 한국에서 이회창 씨가 대선 약 40일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인생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고 생각했다. 전도서를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회창 씨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혜자가 말한 역설적 인생을 조금 알게 된 후에 분노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회창 씨가 자신의 모순된 행동을 알면서도 출마 결정을 내린 것을 보면서 그가 옳다고도 옳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LA 총영사관과 연관된 유학 비리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여기에 미국 진출 한국 야구 선수들은 대부분 연관됐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미국에 머물러 있으려면 유학생비자가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유학원에 등록해야만 했다. 스포츠 기자라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 없었을 것이다. '이걸 보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찰나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선수의 미래와 꿈'을 생각하면 보도하지 말아야 했고 법질서를 위해서는 보도해야 했다. 역설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류 미비자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데 법질서만 생각하면 그들을 신고해야 하지만 그들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안됐나를 생각하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미국 프로 스포츠가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채 돌아가고 있음을 모두 알지만 여전히 필드에 서 있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소개하는 것 역시 역설적 상황이다. ‘슈퍼에이전트로 불리는 스캇 보라스가 메이저리그를 망쳐놓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의 말 한마디가 크게 보도되는 것 또한 인생의 모순이다. '망쳐놓는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선수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그는 부를 갈구하는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모순적이다.

가수 엘비스 코스텔로는 1996년 발표 앨범인 '이 모든 허무한 아름다움(All This Useless Beauty)'에서 '허무한 아름다움'을 쫓는 인생을 노래했다. '허무한 아름다움'이란 모순적인 표현이다. 허무하지만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게 인생이라고 코스텔로는 노래한다.

정말 착하게 사는 것 같은데 고통하고, 정말 나쁜 짓을 다하는 것 같은데 평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인생의 모순이다. 그런데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누가 규정하나. 고통과 평안의 의미는 누가 결정하나. 이것 역시 해답이 없다. 인생에는 모순이 기본적으로 있고 그 안에 뜻과 비전을 찾는 게 삶임을 우리는 조금씩 알게 된다.

'적과의 동침' '원수를 사랑하라'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같은 표현은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모순을 피해갈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모순과 역설을 논리와 합리로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야구를 '세이버메트릭스' 하나로만 해석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이 논리로 해석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해석이 되지 않기에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어서는 안 된다. 무의미한 것 같으면서도 가치가 있는 게 인생이다. 이 표현 자체도 역설적이다.

모든 게 불공평하고 모든 게 이해되지 않지만 의미를 찾으면서 인생길을 걸어갈 때 딱 하나 공평한 게 있다. 바로 죽음이다. 죽음에는 모순이 없기에 어떻게 사는 것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놓고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을 생각하면 복잡하고 모순되지만 죽음을 생각하면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렇다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살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의 결정판이다. 이성주의와 근본주의가 낳은 부정적인 결과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 아닌가. 죽음을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게 또한 인생이다. 나는 오늘도 모순되게 산다. 역설을 품고 산다. [밝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