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영성
Dealing with Difficult Relatives (힘든 가족 다루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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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x Lucado (맥스 루케이도 글)
Does Jesus have anything to say about dealing with difficult relatives? Is there an example of Jesus bringing peace to a painful family? Yes, there is. (예수님은 곤란하게 하는 친척을 다루는 것과 연관이 있을까? 예수님이 고통 받는 가족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예는 있을까? 물론 있습니다.)
His own. (바로 예수님의 친척들이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It may surprise you to know that Jesus had a difficult family. If your family doesn’t appreciate you, take heart, neither did Jesus’.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는 가족/친척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가족이나 친척이 당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까? 예수님도 그런 취급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His family … went to get him because they thought he was out of his mind” (Mark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마가복음 3:21)
Jesus’ siblings thought their brother was a lunatic. They weren’t proud—they were embarrassed!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랑해 하기는커녕 당황해했습니다.)
It’s worth noting that he didn’t try to control his family’s behavior, nor did he let their behavior control his. He didn’t demand that they agree with him. He didn’t sulk when they insulted him. He didn’t make it his mission to try to please them.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가족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는 가족이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가족이 자신의 생각에 억지로 동의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조롱해도 게의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미션은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Each of us has a fantasy that our family will be like the Waltons, an expectation that our dearest friends will be our next of kin. Jesus didn’t have that expectation. Look how he defined his family: “My true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are those who do what God wants” (Mark 3:35). (우리는 우리 가족이 마치 월튼가네 사람들처럼 가장 귀한 친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자기 방어를 하는지 보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가복음 3:35)")
When Jesus’ brothers didn’t share his convictions, he didn’t try to force them. He recognized that his spiritual family could provide what his physical family didn’t. If Jesus himself couldn’t force his family to share his convictions, what makes you think you can force yours? (예수님의 형제가 예수님의 신념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을 때 그는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가족은 육적인 가족이 제공하지 못한 것을 제공할 것임을 예수님은 알았습니다. 예수님도 친척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누구에게 그것을 강요하겠습니까?)
Having your family’s approval is desirable but not necessary for happiness and not always possible. Jesus did not let the difficult dynamic of his family overshadow his call from God. And because he didn’t, this chapter has a happy ending.
What happened to Jesus’ family? (가족의 인정을 받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항상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항상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의 가족은 곤란한 상황이 그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념 위에 그림자 지우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끝은 아름답습니다. 예수님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Mine with me a golden nugget hidden in a vein of the Book of Acts. “Then [the disciples] went back to Jerusalem from the Mount of Olives.… They all continued praying together with some women, including Mary the mother of Jesus, and Jesus’ brothers” (Acts 1:12, 14, emphasis added).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12, 14)
What a change! The ones who mocked him now worship him. The ones who pitied him now pray for him. What if Jesus had disowned them? Or worse still, what if he’d suffocated his family with his demand for change? (변화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를 조롱했던 이들이 그를 예배했습니다. 그를 측은히 여겼던 이들이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변화를 강제로 요구했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He didn’t. He instead gave them space, time, and grace. And because he did, they changed. How much did they change? One brother became an apostle (Gal. 1:19) and others became missionaries (1 Cor. 9:5).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신 그들이 생각할 공간, 시간, 은혜를 허락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이 변한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변했나요? 동생은 사도가 됐으며 다른 형제는 선교사가 됐습니다. (고린도전서 9:5)
So don’t lose heart. God still changes families. (그는 포기한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족을 변화시킵니다.)
From He Still Moves Stones
Copyright (Thomas Nelson, 1999) Max Luc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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