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영성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0)] 원수를 어떻게 사랑한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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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통 ‘원수(enemy)’라고 말하면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원수는 나와의 관계에서 뭔가 맞지 않아 원수가 된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객관적인 원수가 아닐지라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원수에 대해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원수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원수입니다. 이런 원수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구약의 하나님도 반드시 쳐서 없앨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탄 무리를 쫓아내는 장면이 신약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0장에 이러한 원수에 대한 지침을 내립니다. 전쟁을 하도록 합니다.
신명기 20장에 두 종류의 원수가 모두 나옵니다. 20장3절에 나오는 원수는 첫 번째 종류의 원수입니다. 원수와 싸움을 할지라도 평화를 위해 중재의 제안을 할 것을 설교자 모세는 명령합니다. 20장14절에는 원수가 살아나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바로 두 번째 종류의 원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두 종류의 원수성향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민족에게 이 두 종류의 원수 성향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종류의 원수가 되면 우리는 제 명대로 살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종류의 원수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도록 선택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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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이 요즘 인기를 끄는데 K1에서 상대는 일단 적(enemy)이고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규정 안에서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규정 밖의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적에게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승리 후에는 적에게 격려하고 적와 악수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싸우느라 수고한 적에게 격려를 하는 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카에다는 서방 세계의 적입니다. 원수입니다. 그들의 폭탄 테러, 자폭 테러는 반드시 막아야하고 그들에게 대적해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신명기 20장 초반에 나오는 표현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그들은 이겨야할 원수인 동시엔 땅을 얻으면 안 되는 원수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왜곡하여 세상에 전하기 때문입니다. ‘성스러운 전쟁’을 외치며 그들은 오늘도 테러를 자행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이것은 왜곡된 신이고 결론적으로 ‘다른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인마 강호순, 잔인한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은 어떤 원수일까요. 그들은 반드시 이겨내야 할 원수입니다. 사회의 적입니다. 그들은 또한 사탄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적입니다. 사회에서 인권을 보호받을 수 없는 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민족이나 집단이 아니고 개인이기에 격리 수용되어 사랑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격리됨은 두 종류의 원수 짓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도소 수용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 이 원수들을 사랑하는 간접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이는 억울하게 잡혀 들어간 사람을 제외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교도소의 재정이 궁핍하다고 이들을 조기 출소시킨다든가 이들에게 똑같은 권리를 다시 준다면 이는 결국에는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행위가 됩니다.
사랑은 하고 싶은대로 아무렇게 하게 내버려두는 게 아닙니다. 오늘 운전을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둘째 아이가 자동차 뒷쪽의 창문을 갑자기 열며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해 문을 닫으라고 했고 창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하도록 잠금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는 둘째 아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둘째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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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도 그런 개념일 것 같습니다. 교도소 밖으로 나오면 많은 사람을 너무 괴롭히고 죽이기도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모아두고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러는 중에 착한 심성을 갖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원수를 밟아 이긴다는 말은 그들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는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한다는 개념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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