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영성
[고린도전서와 미국사회(최종)] 죽음과 부활 본문
A Little Perspective by loswl
고린도전서 15장과 16장(마지막 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아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최종 심판에서 통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인간 예수는 그러한 심판을 통과해 부활했습니다.
그 심판의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죽음은 모든 논쟁의 정답을 주는 것입니다. 정답은 죽는 순간에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찰나에 모든 게 결정이 납니다. 100m 달리기 선수가 10초 안에 달려야 하는 광속(?) 승부를 내듯이 죽음의 순간에 인생에서 우리가 쏟아놓았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후반부에 눈깜짝할 사이에 심판의 결과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해답을 주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해결했다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또한 부활과 연관이 되고 부활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천국의 이미지를 갖도록 합니다 (15:49).
죽을 때 모든 승부의 결과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견고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었어도 죽음 앞에서는 그 이론이 무색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죽는데 무슨 이론이 필요하겠습니까.
고린도 교회는 온갖 혈기를 부리는 교인들로 가득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자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예수의 죽음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기본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15장에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죽음으로써 부활한 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믿는 자도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후에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크리스천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으신 후 부활하셨고 이에 대한 증인과 증거가 너무나 많기에(고전 15:3-9) 믿을 수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의 길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의 도덕성을 믿는 게 아니라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길을 만드셨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인간이 도덕으로는 율법으로는 도저히 천국문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이러한 은혜의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에 대한 강력한 징표로 십자가 사건을 허락하신 것이고 그 사건은 우리의 죄를 속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혼란의 연속입니다. 오늘날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는 혼동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미래에 우리에게 닥쳐올 죽음과 부활을 생각해 봅니다.
[고린도전서 연재를 마치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연재였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고린도교회는 교회를 시작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미국과 한국도 교회를 시작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점점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음과 부활을 보이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1세기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 말에 위로가 됐을 것 같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 사건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알려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다른 이들도 함께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은혜와 자유를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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