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영성

[사사기와 대중문화의 만남(3)] 하나님 앞에서 다름과 틀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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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와 대중문화의 만남(3)] 하나님 앞에서 다름과 틀림

밝은터 2010. 1. 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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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cause1 by musical photo m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여성이 안수를 받고 담임목사가 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강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심지어 여성들조차도 여성 담임 목사에 대해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예로 듭니다. 구약 성경에 제사장은 모두 남성이었고 신약 성경에 사도 바울이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예로 듭니다.

저는 감히 말합니다. 여성이 목회자로서 안수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화적인 편견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편견을 서포트하기 위해 성경 말씀을 잘 못 차용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28절에는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말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전에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전에는 종(slave)을 허용했지만 모든 사람이 자유하며, 전에는 여자가 부족한 것처럼 느꼈는데 하나님은 남녀를 구별해서 사랑하지 않으시며 그는 모든 이를 동등하게 사랑하시는 분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안에는 차별하는 마음이 생겨날까요. 이는 오랫동안 내려온 문화적인 유산, 정신적인 유산 때문입니다. 백인이 흑인 노예 제도를 사용했을 때도 함의 자손들인 흑인이 노예가 됨의 정당함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성경의 차용이 오랫동안 묵인되었고 당연시되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선민사상과 남성만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남성우월주의사상을 갖고 있었기에 구약에는 차별적인 언행이 자주 기록됩니다. 사사기는 바로 대표적인 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여성에게 맞아 죽기 전에 여성이 자신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 것을 강조했다는 내용이 사사기(Judges) 9장에 나옵니다. 여성에 대한 편견적인 발언인 것이죠.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사사기를 통해 하나님이 여성에게도 힘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드보라가 사사와 장군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렸고 형제 70명을 죽이고 바알 신을 섬기도록 내버려둔 아비멜렉을 쳐서 죽인 자도 여성이었습니다.



옳은 일은 아니지만 사사기에 삼손을 유혹한 여성 들릴라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분명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문화가 존재했으면서도 동시에 여성이 파워를 행사한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파워가 아니라 하나님이 구별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을 고루 사용하시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편견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남자가 아니었던가. 첫 번째 인간인 아담이 죄를 짓도록 유혹한 존재는 여자가 아니었던가.

예수님은 분명 남성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중성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유대 문화가 남성중심적인 사회였기에 선교사 활동을 위해 남성이 적당하다고 하나님이 판단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이 우월해서 예수님이 남성으로 오신 게 아니라 남성우월주의 사회였기에 남성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만약 유대 사회가 여성우월주의사회였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여성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는 아담도 같은 죄를 지었기에 누가 유혹했고 누가 유혹을 당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혹을 한 자나 유혹을 당한 자 모두 하나님을 등진 자이기에 죄인인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섞자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가 해야 할 일, 여자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남자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일이고 여성이 아기씨를 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여성이 목회자로서 안수를 받아도 됨은 그러한 근본적인 역할 분담과는 사실 연관이 덜 있습니다. 지금은 여성이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입니다. 그러기에 여성 목회자가 필요한 것이고 여성 목회자의 안수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목회자 안수는 따라서 창조의 원리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원리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입니다.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대에서 방황하는 여성들이 있다고 합니다
. 남성 목회자는 그들을 돌볼 수 없습니다. 스캔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성 목회자는 태부족합니다. 그들은 돌봐줄 목회자가 없습니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지금 목회적인 상황이 여성 목회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성 목회자에 안수하실 것입니다. 그 안수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대중문화에서 여성을 폄하하고 여성은 하등 인간인 것처럼 비춰질 때가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과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닙니다. 다름과 틀림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백인과 흑인이 다르고, 아시안과 히스패닉이 다른 것처럼 여성과 남성은 다른 점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틀린 것은 아닙니다. 틀리다고 말하자면 사실 남자도 틀리고 여자도 틀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르면서도 틀린 존재들입니다. [밝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