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영성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4)] 사실과 진실 본문
293/365: SILENCE = DEATH by malik ml williams [flickr-ing in and out]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글을 쓰는 밝은터에게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인 하나님의 성품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인공의 성품을 모른 채 책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면 전체 내용 파악을 하는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은혜, 자유, 질서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성품을 마음에 품고 성경을 읽을 때 오해가 덜 생깁니다.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은혜, 자유, 질서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강조됩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쓸 때는 질서를 많이 강조하는 듯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질서가 무너지니까 그런 어조로 편지 글을 씁니다. 그렇다고 은혜와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와 자유가 적절하게 포함됩니다.
신명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질서가 강조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예수님을 초대하면 생각이 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명기 설교의 상황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보면 은혜와 자유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숨겨진(?) 성품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을 읽을 때 ‘무서운 하나님’의 관점으로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오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우리를 괴롭히는 하나님이 되면 메시지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신명기 24장에는 여러 규정이 나옵니다. 이혼은 제한적으로 허용됐지만 이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에 원래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일이었으며, 갓 결혼한 사람은 군복무에서 제외되며, 유괴범은 사형에 처하며, 문둥병에 따르는 의식이 있어야 하며, 적시에 품삯을 지불해줘야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둬야 할 이삭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이 규정을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그대로 적용하면 어떨까요?
이 규정에서 보여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입니다. 그리고 질서입니다. 첫째 남편은 여자에게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이혼증서를 써줬습니다. 그리고 둘째 남편도 비슷한 사유로 이혼증서를 썼거나 사망을 했는데 이 여자가 첫 번째 남편에게 가는 것은 가증스러운(abhorrent) 일이라고 합니다. 21세기의 상황에서는 참으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가증스러운 것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이를 두 가지 의미에서 해석하는데 첫 번째는 남편이 여자가 싫어서 이혼증서를 써줬는데 다시 맞아들이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다가 다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일로 여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여자에 대한 보호입니다. 여자가 함부로 다뤄지지 않도록 하는 보호법으로 보입니다. 정결하지 않은 여자는 돌로 치라는 규정이 당시에 있었기에 자칫 잘못 그런 여자로 몰려 죽음을 당할 수 있기에 보호하려는 규정으로 보입니다.
갓 결혼한 사람이 군복무에서 제외되는 것은 지금 적용해도 좋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유괴범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조금 과하지만 유괴범이 법의 심판을 확실히 받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머지 품삯을 적시에 주는 것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남기는 것은 시대가 지나도 계속 적용되어야 할 성경 말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자유, 질서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은 연합을 꾀하며, 약자를 보호합니다. 또한 죄에 대해 은혜의 손길을 뻗칩니다. 교도소에 있는 분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칠 때 그들에 대해 은혜, 자유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을 당장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을 긍휼하게 봐야 하는 것입니다.
장동건3 by Raymond.Kang
배우 장동건과 고소영이 사귄다는 소식이 한국 시각으로 어젯밤 자정 직전에 터졌습니다. 갑자기 터진 것에 의아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군 혈서 사건과 연관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영 찜찜합니다. 과거 연예인들의 사건이 많은 정치, 사회적 사건을 묻히게 한 것을 보면 왠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사실로 보면 장동건과 고소영은 사귀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보면 그 사귀는 것이 왠지 정치적으로 이용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일수도 있고, 진짜 정치적인 어떤 음모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사실을 볼 때 진실을 볼줄 아는 눈과 정보를 갖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사실에서 끝나지 않고 진실과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진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허락하심입니다. 수많은 사건이 사실을 제공합니다. 그 사건들의 진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의 틀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논쟁이나 토론을 할 때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무시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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