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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엄마와 같은 존재가 필요한 우리 사회 본문

유명인

따뜻한 엄마와 같은 존재가 필요한 우리 사회

밝은터 2009. 4. 22. 02:13

성경: 로마서 71-6

의미 심장한 로마서 7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 7장은 의미심장한 장입니다. 주의해서 읽지 않으면 엉뚱한 메시지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로마서 7장에는 율법(the Law)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율법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설명됩니다.

율법을 생명체처럼 느끼게 설명

사도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경건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생명체 노릇을 하는 것은 돋보이려면 우리의 죄가 환히 드러나야 합니다. 죄가 안 드러나면 율법은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인생에서 장점이 곧 단점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온전하지 않는 이유는 제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인간이 죽기 전까지만 필요하고
(로마서 71) 문자(로마서 76)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살아나면 나는 죽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어야, 나의 죄가 드러나야 율법의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필요하면서도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이렇게 역설적입니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 나에게 독이 될 수 있고, 나에게 독이 되는 사람이 나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문명은 인간을 편하게 했지만 한 편으로는 인간을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처럼 인간 사회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완벽한 게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는 율법이 아니라 성령

우주에서 완벽한 존재는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 온전한 존재를 섬기는 방법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입니다 (로마서 76). 율법에 자유해져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 때 인간의 삶은 점점 온전해집니다. 점점이라는 말은 한 번에 온전해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죽는 날까지 차츰 온전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를 져야 돋보이지만 성령은 우리가 온전해질수록 빛이 나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는 거룩하지만 인간과 연관을 짓게 되면 죄를 드러나게 합니다. 성령은 그 자체로도 거룩하고 인간과 연관지어지면 죄를 녹입니다. 그 차이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시기 전에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율법이 살아나려면 인간의 죄가 드러나고 죽어야 했기에 인간은 율법과 처절한 씨름을 해야했습니다. 죄가 드러나지 않고 죽지 않기 위해 율법과 씨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굴레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그렇지 않다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하는 전문가

성령이 함께 하면 인간은 거룩에 가까워집니다. 율법이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배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죄성이 살아납니다. 이때 율법이 들어와서 우리를 얽매게 됩니다. 율법은 불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는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율법과 성령을 오가며 인생을 살게 됩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합니다. 법은 우리가 일정 속도 이상으로 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못 박아두었습니다. 그 법이 드러나려면 우리가 속도 위반을 해야 합니다. 그 법이 필요없지는 않지만, 질서를 위해 필요하지만 법의 역할은 우리의 죄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속도 계기판은 성령과 같은 존재

자동차 안에 속도 계기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운전하는 속도를 알려줍니다. 그런데 계기판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지 않고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나 운전 법률은 우리에게 속도 위반의 죄를 인식하게 해줍니다. 성령은 속도 계기판처럼 우리의 상황을 알려주지만 우리를 죄의식으로 몰아넣지는 않습니다. 그 존재의 역할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줍니다. 그러나 율법은 운전 법률 같아서 우리에게 죄를 알게 해줍니다.

율법은 엄격한 선생이라면 성령은 따뜻한 엄마같습니다. 우리는 제한된 존재이기에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에서 엄격한 선생은 필요 없습니다. 오직 따뜻한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엄격한 선생과 같은 우리 사회

우리 사회는 엄격한 선생과 같습니다. 잘못이 드러나면 모두 손가락을 들고 삿대질을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잘못을 안 한 척하고 삽니다. 교회를 가면 모두 거룩하게 보입니다.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엄격한 선생에게서 훈련 받은 결과입니다. 간혹 따뜻한 엄마의 사랑이 충만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엄격한 선생의 훈련을 받고 멀쩡하게 앉아 있습니다. 잘못을 드러내면 지탄을 받기에 문제가 없는 척이라도 해야 합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왜 자살을 선택합니까? 얼마 전에는 영국의 한 배우가 자살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따뜻한 엄마를 경험하지 못해서입니다. 제가 좋아했던 배우 최진실 씨는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이 사회에 너무 엄격한 선생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엄격한 선생일 뿐인데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율법인 것처럼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율법 하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입니다.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 합니까? 이런 말을 하면 정의로운 분들은 싫어합니다.


최진실 / 탤런트
출생 1968년 12월 24일
신체
팬카페 만인의 연인 최진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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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그런데 정의는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에게만 있습니다. 성령은 따뜻한 엄마와 같아서 죄 많은 자식도 다 품에 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사실 이 사회는 율법이 필요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두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안 그렇습니다. 내가 잘못을 하면 그것을 받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따뜻하게 품어줄 엄마와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손가락질을 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겠습니다. 그는 유일한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적용

사람을 볼 때 성령의 마음으로 본다. 나를 볼 때는 율법의 잣대로 때론 필요하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니까. 사람을 볼 때 율법을 들고 보면 어울려서 지낼 사람이 있겠는가. 성령의 마음으로 봐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끔 율법의 잣대도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