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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도 긴 생각

성공을 위해 실패를 선택한 사람

밝은터 2010. 1. 29. 13:36


by claude.attard.bezzina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성공을 위해 실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란 말에는 어폐(語弊)가 있다. 이처럼 아이러니인 말이 어디 있을까?

여기서 '성공'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의 '성공'이고 '실패'는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의 '실패'이다.

실패는 그러나 한 차원이 높은 세계에서는 '성공'으로 여겨진다. 결국 높은 차원에서는 실패=성공인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공은 한 차원 높은 세계에서는 실패가 된다. 즉, 이 경우엔 성공=실패가 되는 것이다.

'실패=성공'이라고 할 때의 실패는 내 양심에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서, 내 이웃이 피해를 보는 것이 싫어서,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실패이지만 곧 성공이다.

내 양심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이 박수를 쳐주기 때문에 성공을 했을 때 그 성공은 한차원 높은 세계에서는 실패가 되는 것이다.

결국 고차원에서 실패는 성공인 것이다. 인생의 실패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 생각이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지하철 안에서 마치 미친 노인처럼 통일과 예수를 외쳤을 때 사람들은 그를 실패자로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였다.

예수는 인간의 눈에는 실패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성공한 존재였다. 예수의 제자들마저 잠시 예수를 실패자로 보지 않았던가. 그는 인간에게는 실패였지만 하나님에겐 성공을 거둔 존재였다.

시장 바닥에서 하루 몇 천 원씩 벌었던 할머니가 수천만원을 사회에 기부했을 때 그는 주변 인간에게는 실패자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높은 차원에 있는 분께는 성공한 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기왕이면 성공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공이 아니면 그것은 곧 실패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것은 낮아짐과 순종의 자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밝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