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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밝은터 2009. 7. 21. 02:46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보면 사실 우리는 핵심적인 것을 놓칠 때가 있다. 바로 '네 몸(yourself)'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내 이웃에 대한 사랑이 달라진다. 

 윤리학자인 글렌 스태슨은 "사랑은 상호적이지 결코 한쪽으로만 쏠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결국 내 이웃과 내 몸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상호적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Rick ankiel
Rick ankiel by shgmom56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오랫동안 지속된 메이저리그 야구 약물 이슈를 보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생각났다. 릭 앤키엘이 몇 년 전 약물을 복용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는 미 언론의 조롱이 시작됐다. 나의 삶을 어떻게 다뤘느냐에 따라 이 이슈에 대한 반응은 달라진다.

#1 인생에서 돈 버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약물을 잘 활용하면 몇백만 달러, 몇천만 달러를 벌 수 있는데..."
#2 약물 복용으로 고통을 받았던 사람: "그거 절대하면 안 돼. 몸 망치고 인생 망친다. 선수들이 너무 걱정돼..."
#3 현재 마약이나 약물을 복용하는 자: "그게 뭐 어때서, 쿨 하잖아. 잘하고 있어!"
#4 성인(예수님 등): "네 죄가 없거들랑 돌을 던져라. 그는 100마리의 양 중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다." 

 이들은 모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내 몸을 내 생각을 내 삶을 어디에 맡기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사랑의 표현 방식은 너무나도 다르다. 

 우리가 '사랑'을 논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랑이 이상적인 도덕의 완성이라고 착각을 하는 점이다. 사랑은 어려움에 빠진 자를 난관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이웃의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게 어려움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 일은 그냥 지나가는 일이다. 사랑을 보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결'(confrontation)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게 바로 사랑의 묘미다. 대결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쉬운 방법(그 자체로 이해하는 척 또는 무관심)을 선택한다. '대결 상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대결'을 하는 사람을 사랑이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 잘못된 사랑의 관점 때문에 오늘날 '사랑'은 연약한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약물 이슈를 보면서 필자는 나(myself)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약물 이용 선수를 바라보며 문제 해결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5차원 전면 교육(원동연 박사)'이라는 것을 스스로 도입했다. 

 메이저리그도 약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개발해 내놓아야 했고 그것이 지금 실행 중에 있다. '완벽한 시스템'은 있을 수 없지만 '돕는 시스템'은 만들 수 있다. 필자의 사랑 방식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 칼럼의 핵심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이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