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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 좀 파악하면서 읽자

밝은터 2010. 1. 7. 06:33

미국 학교에 다녔던 분들은 모두 알겠지만 지정된 도서를 읽고 학생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논지(Thesis)를 찾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친절하게 논지를 서술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학생은 책을 읽으면서 논지를 찾아내야 한다. 논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책을 읽은 것이 허사가 된다. 그래서 상세한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책을 전체적으로 한 번 훑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논지가 파악되지 않으면 상세한 내용을 알더라도 그것은 헛된 지식이 되기 때문이다.

성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논지가 파악이 되지 않은 채 성서를 읽으면 그 안의 내용을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한 성경학자는 나와의 대화에서 성경의 논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온 세상에 대한 언약적 사랑(covenantal love)을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통해 실현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논지를 모른 채 성경을 읽었다면 헛된 지식만을 쌓아둔 것이 된다.

LA 레이커스의 감독인 필 잭슨이 쓴 '마지막 시즌(The Last Season)'의 논지를 파악하지 못한 독자들(기자들 포함)은 그 책 안의 가십거리만 잔뜩 발췌해 이를 '공격 무기'로 활용했다. 특히 "코비는 코치하기 어려운 선수(uncoachable)"이라는 표현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수천 번 인용됐다. 이는 마치 약 2000년 전에 "독사의 자식들아(the brood of vipers)"라고 말했던 예수의 발언만 반복해서 인용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잭슨 감독의 논지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시즌'의 논지는 "별의별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는 농구 코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였다. 그의 농구에 대한 사랑이 '마지막 시즌'의 논지였다. '코치하기 어려운 선수'인 코비 이야기는 여러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고 이 책의 논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아니었다.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를 책 전체의 논지인양 기자들은 치부해버렸다. 그게 논지였다면 책 제목은 'Uncoachable Kobe(지도하기 어려운 코비)' 정도가 됐을 것이다.

 '마지막 시즌'이었지만 그는 농구 코트에 대한 미련이 있었고 결국 책을 출고한 얼마 후에 레이커스의 감독으로서 복귀를 했다. 그것도 'uncoachable'한 코비가 뛰는 팀으로 복귀를 했다. 언론은 코비와 필 잭슨의 관계가 180도 달라진 것처럼 표현했지만 '마지막 시즌'을 읽어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잭슨은 오히려 코비가 자신의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렸고 제자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를 원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분명 그런 내용이 있다.

 책을 읽을 때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이 정말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그동안 코비와 필 잭슨의 관계에 대해 기사를 썼던 기자와 독자들 중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책을 다시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밝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