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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존재'가 될 것인가 '쌍방향 존재'가 될 것인가

밝은터 2010. 1. 5. 06:16


12월 말과 신년 초에 무료함을 달래고자 책장에서 먼지를 친구 삼아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다. 아마존 닷컴의 도서평이 매우 좋아 몇 달 전 구입했던 이 책의 제목은 'Marginality(변방)'이고 저자는 드류 대학의 신학자인 이정용(Jung Young Lee) 교수다. 과거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이 책은 미국의 변방에 있는 아시아 이민자들의 과거 역사 현주소 및 미래를 다뤘다.

이 교수는 "많은 아시아 이민자가 변방에서 중앙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중앙에서 노란색 피부의 변방인을 반기지 않았다. 중앙으로 향해 갈수록 변방의 사람들은 좌절감을 맛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시안 이민자 2세들은 중앙으로의 진출을 거절당해 아시안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낀 존재(in-between)'가 됐다. 그것으로 인한 좌절감은 변방에서 마음 편안하게 지내겠다고 결정한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이정용 교수는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는 "미국은 다원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볼 때 미국은 멜팅 팟이 될 수 없다. 모자이크 사회가 될 것이다"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모자이크 사회가 미국을 위한 적절한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이크는 변방에 있어도 모든 구성원이 중요한 조각(piece)인 그런 사회다. 변방에서 중앙을 향해 달려가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사회다. 이는 현실로 이뤄질 수 없는 이상적인 사회일 수도 있지만 이 교수의 모델은 모든 이들에게 평안을 안겨줄 수 있다. 중앙에 있는 힘있는 자도 변방에 있는 힘없는 자도 자신의 자리에 만족해하고 기뻐하는 그런 사회의 모델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포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많은 한국계 또는 한인 선수들이 변방에서 중앙을 향해 달리다가 마음고생을 했고 이것은 곧 주변인들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시련을 겪은 후에 성숙해질 수도 있지만 반면 상처로 가득해 이 경험이 마음의 칼날을 갈게 할 수 있다. 변방에서 중앙으로 달렸던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칼 가는 사람'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중앙에 편입된 후 그들 대부분은 변방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에게 "누구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다. 뜨니까 변방은 무시했던 것이다. 변방은 그들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중앙에서도 소위 한국인 스타를 완벽히 받아들이지 않는데 있다. 결국 그들은 여기도 저기도 속할 수 없는 '낀 존재'가 된다. 스포츠 분야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더 이상 '낀 존재'가 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변방의 스포츠인들은 '쌍방향 존재(in-both)'가 되어야 한다. 변방도 중앙도 모두 챙기는 그런 인물이 된다면 그들은 자신이 목표한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모자이크 사회의 모델이다. 우리가 '낀 존재(in-between)'가 될지 '쌍방향 존재(in-both)'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정용 교수는 장벽을 '초월하는 존재(in-beyond)'가 될 것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역사의 인물 중에 예수가 그런 존재라고 했다. 예수는 유대인 사회에서 중앙이 아닌 변방에 있던 분이었다. 그를 생각하면 모자이크 모델이 아주 불가능한 공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밝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