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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의 아름다움

밝은터 2010. 1. 1. 05:38


몇 년 전 나는 미국 이민자로서 오랫동안 살았던 한 언론인(당시 80)과 장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3시간의 운전 길 내내 우리는 한국 정치, 미국 사회, 미국 이민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 마음속에 남는 내용은 그의 자녀 이야기였다. 그 원로 언론인은 세 자녀를 키웠는데 두 자녀가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해 변호사가 됐다고 소개했다. 하버드대 출신 자녀를 둔 아버지의 자랑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들어보니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하버드대를 나와 변호사가 된 첫째 자녀는 "이 일이 천직이 아닌 것 같다"며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50세가 넘은 지금까지 LA 인근 샌퍼난도 밸리라는 지역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아드님이 교사직에 만족합니까"라고 질문했더니 그는 "물론입니다"라고 답했다.

둘째 딸의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역시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큰 회사의 재정을 담당하는 변호사로 맹활약하던 딸이 아기를 낳은 후 전업주부가 됐다는 것이다.

이유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의 사랑이지 돈이 아니라는 가치론 때문이다. 허름한 소파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딸의 모습을 보며 그 원로 언론인은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속이 많이 상했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는 그의 자녀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 "성공스토리를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팔을 살짝 만졌다. 기쁨의 표현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그렇게 애써서 가르쳤는데 아깝겠네요…"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담'은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높은 가치를 두고 기뻐하는 삶을 담은 그릇을 소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사격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후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던 강초현(당시 23세 고려대)의 원래 꿈은 체육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트리플A에서 좋은 피칭을 했고 2009년 현재 다저스 산하 트리플A에서 활동 중인 최향남(야구 선수)을 인터뷰한 기억이 있는데 그는 "은퇴 후 계획은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야구에 도전했던 최익성(위 사진)이라는 선수도 나와의 만남에서 "미국 프로야구에 도전하는 것 자체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큰 꿈을 가지라'고 우리 귀에 확성기를 대고 말을 한다. 큰 꿈을 갖는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소박한 꿈도 큰 꿈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 하버드대를 나왔든 고졸이든 중졸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남을 해하지 않고 사는 삶 그것이 소박한 삶이 아닐까. 어찌보면 예수님도 제자들도 소박하게 살다가 천국으로 가셨다. 사도 바울이 화려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만 소박한 삶의 대표주자였다. 그래서 소박한 삶은 위대하다. [밝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