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8절부터 10절까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랑. 사랑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이 편지를 쓴 사도 바울은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10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것 같았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느낌이 듭니다. 사랑하면 생각나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니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구치 않고, 성 내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나옵니다.
느낌이 어떻습니까? 꽤 수동적이죠. 능동적으로 나가서 사랑을 베풀고 그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내면 세계를 잘 돌봄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면 세계를 잘 돌봐야 사랑이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서 13장10절에 나오는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표현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보통 능동적인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대표적인 사랑 같은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사랑보다는 정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랑이 있어야 정의도 구현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 사랑은 내면 세계에서 내 마음을 잘 돌봐야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사랑은 나를 절제하고 내 마음을 다스리고 이웃을 힘들게 하지 않는 것이라는 바울의 말은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사랑과는 조금은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랑과 정의를 혼합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랑은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행위로 나오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는 사랑을 기본으로 한 정의로운 일을 하고자 할 때 나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10절과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연히도 같은 13장에 있네요.
사랑은 내가 가서 손을 뻗치는 게 아니라 내면 세계에서 발생하는 죄된 나를 잘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내면 세계가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사랑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내면 세계를 잘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묵상 생활입니다. 나를 봐야 내면 세계가 보이는데 조용한 가운데 묵상은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바쁜 가운데에서는 나를 볼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히틀러를 암살하는데 동참했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와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뒤집었던 예수님은 이웃에 해를 끼치는 자가 아닌가요? 이런 질문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인데 왜 그들은 그런 행동을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히틀러는 우리의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악을 조장하는 거대한 파워였습니다. 개인이지만 그의 영향력과 존재는 이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악이었습니다. 성전 앞에서 장사를 했던 이들을 놀라게 했던 약간은 폭력적인 예수님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이 썩어 빠져버린 것은 어떤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단 전체의 악으로 봤기에 예수님은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 것은 이웃에게 해를 끼친 것도 무례히 행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을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나 어떤 집단이나 국가에서 악을 조장하는 자들을 간단히 이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음란물을 배포한다든가, 불법 도박을 조장하는 자들을 단순히 이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테러를 하자는 것은 아니구요, 그들이 더 이상 악을 배포(?)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신고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악을 조장하고 있으면 그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례히 행하는 게 아닙니다.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닙니다. 이유는 그들은 그 행위에 대해서는 이웃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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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 |
출생 |
1926년 1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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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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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대사에서 큰 역할을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게 달러를 엄청나게 갖다준 것은 악을 조장하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들의 권위와 권세는 인정하되, 잘한 부분은 인식하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고치고자 하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정의인 것 같습니다. 사랑을 할 때는 이웃인지 아니면 이웃차원을 넘어선 큰 악의 중심인지를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