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영성

예수님의 완급조절 본문

스포츠

예수님의 완급조절

밝은터 2009. 4. 21. 14:26


성경: 마가복음 11장23절-24절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이해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잘 아는 사람에게일수록 강하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 제자들에게 손을 잘라라, 눈을 빼라는 등의 말씀을 하신 것은 진짜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입니까? 그만큼 중요하니 잘 지키라는 뜻으로 강하게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3절과 24절의 말씀을 보면 산을 움직이는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산을 상상합니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하신 강한 비유였습니다.

강력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내용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나마 예수님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이 정도로 예를 드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시면 예수님이 관계적이면서 기능적인 면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말씀의 완급을 조절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투수의 완급 조절과 예수님의 완급 조절

야구장의 투수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 투수가 계속 똑같은 스피드로 공을 던진다고 하면 타자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주 치기 좋겠죠. 투수는 완급을 잘 조절해야 좋은 투수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빠른 공을 던졌다가 어떤 상황에서는 느린 공을 던지죠. 또 어떤 상황에서는 변화구를 던졌다가 어떤 상황에서는 유인구를 던지기도 하죠.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게 공을 던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완급 조절을 잘 하시는 투수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강한 어조로 말씀을 전하셨다가 어떤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잘 못 알아듣게 비유로 말씀하셨다가 어떤 때는 그냥 명령을 하시기도 합니다. 여기서 그 분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었슨비다. 그 목적을 위해 완급 조절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야구를 하셨다면 제구력이 뛰어난 그리고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직구 투수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마치 계속 빠른 공만 던지는 투수로 생각합니다. 항상 빠른 직구로 상대에 직격탄을 날리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완급을 조절하는 제구력(control)이 뛰어나고 커맨드(command)가 좋은 투수였습니다.

야구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투수가 얼마나 빠른 공을 던졌느냐만 보면 야구 정말 재미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 투수' 그렉 매덕스의 환상적인 완급 조절의 경기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완급 조절, 컨트롤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야구팬은 투수와 타자의 신경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그래서 공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됩니다.

그렉 매덕스 (Gregory Alan Maddux) / 외국야구선수
출생 1966년 4월 14일
신체 키183cm, 체중84kg
팬카페
상세보기

예수님의 사역도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그저 직구만을 던지는 투수로 이해했을 때 성경은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 제대로 성경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완급 조절을 잘 하는 투수로 이해한다면 성경의 다이나믹한 면과 유연성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의 말씀의 뜻을 잘 이해해야!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직구 투수만으로 이해하면 우리는 "그럼 산을 움직이지 못하면 믿음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로 이해하면 "..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들도 믿음을 가지면 이겨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산과 같이 앞에 우뚝 서 있는 장벽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장벽을 기도와 믿음으로써 넘어서야 하는데 우리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합니다.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옆에 계심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는 예수님은 완급 조절을 잘 하시는 투수와 같은 분이었다는 것
,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용: 어려움을 극복할 믿음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