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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를 보지 말자구요?

밝은터 2009. 4. 11. 02:52


로마서 118-32

기독교와 할리우드 영화의 관계

기독교와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은 오랜 시간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되냐고 질문을 하면 대체로 나오는 답변은 섹스, 폭력 자극적 컨텐트 으로 가득한 할리우드가 세상을 망쳐놓고 있다 답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슬렘 사회 지도자들도 같은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를 싫어합니다. 한국 드라마나 한국 영화가 모슬렘 사회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자극적인 컨텐트가 거의 없기 떄문입니다. 한국 드라마 자체에 자극성이 없다는 아니라 사회로 수출된 드라마나 영화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할리우드 이야기로 돌아오면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영화 내용에 대해 자주 비평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좋아할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기독교인들을 자극하는 영화는 뜬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오히려 네가티브 이미지 마케팅 하게 됐습니다. , 기독교인들이 펄펄 뛰면 마케팅이 되어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패러다임 시프트 이뤄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패러다임 시프트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성경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보는 인간사와 하나님 관점

로마서를 읽다보면 인간이 욕정대로 사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로 성적인 욕정이 나옵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바로 이런 성적인 욕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메시지를 던집니다. 또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내용이 주를 이루며 시가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28). 재미난 사실은 성경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도 그렇구요. 요즘 막장 드라마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데 바로 로마서 128 내용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인간사입니다. 우리는 중상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불손하고, 오만하고, 자랑하고, 악을 꾸미고, 우매하고, 신의가 없고, 무정하고, 무자비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만 그런 아니라 우리 인생사가 그렇습니다.

그럼 똑바로 살아야 되겠네

로마서 118절부터 32절까지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 똑바로 살면 되겠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똑바로 있을까요? 스스로 위와 반대되는 삶을 있을까요?  그럴 없습니다. 인간은 내버려두면 어쩔 없이 허망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해야 일은 똑바로 사는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똑바로 살게 됩니다. 로마서 122절을 보면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존재라고 나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어리석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혼자 알아서 있다는 허망한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럴 필요한 것은 스스로 똑바로 사는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를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그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입니다. 세상을 만든 ( 1:20) 보고 인정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1:28). 그것은 기독교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라고 중심적인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뜻대로 됐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말을 들어줬다고 말하는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뜻대로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있는 내용을 우리가 기도했기에 하나님이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 아니라 이미 우리의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안에 있기 때문에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피조물이 일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뜻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훤히 알리셨습니다 ( 119). 우리가 거부할 없을 정도로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오신 일은 가장 명확하고 핑계를 없는 그의 뜻입니다.

할리우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 그렇다면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문화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어떤 내용을 다룰 레벨이 있다면 인간의 문란한 삶은 A, B,C, D 있을 B 레벨이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B급에서 대화를 하고 언쟁을 하고 싸움을 합니다. A 레벨은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self-glorification) 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문화의 문제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는 사고방식이 바로 가장 우리의 죄입니다. 대중문화나 할리우드 영화는 바로 이것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A 되니까 B,C,D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편지가 도덕적으로 살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해라,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분이다, 우리가 일은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우리 인간의 죄성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버려두면( 126-28) 그렇게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생각할 때도 상당히 우리 중심적입니다. “내가 잘하면 되는데…”라고 생각하는데 오판입니다. 내가 잘하는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지 않기 때문에 죄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준비 중에 있는데, 하나님께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나요? 뜻에 따르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서고 주님 말씀하시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근원임을 너무나 압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하게 하소서. 이런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도를 것입니다.

Think Deeper

내가 니체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는 우리 세계에는 신적인 질서나 선의 자취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세상은 인생을 살기에 무척 끔찍한 곳일 텐데, 니체도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그는 아주 일관성 있는 무신론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배척한 성경적 세계관에서 아무것도 빌려 생각이 없다. 그의 철학과 성경의 관점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대조는 매우 교훈적이다. 니체가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도움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쟁점을 명약관화한 용어로 규정지었다는 점이다. <리처드 마우, ‘무례한 기독교,’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