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영성
[고린도전서와 미국사회(3)] 새 분야에 대한 해석 본문
Rainbow silhouette by Swamibu
사람의 의견은 때로는 중요합니다. 사람의 인식도 중요합니다. 하나님 명령대로만 살면 참으로 간단하고 편할텐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삶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파트너십을 이루며 살면서도 동시에 우리 인간 사이에서도 파트너십이 유지됩니다. 물론 하나님과의 파트너십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그의 명령을 이행하고 그를 기쁘게 하는 파트너십이겠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과 8장에서 사람의 의견으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7장에서는 결혼에 대해, 8장에서는 제사 때 쓰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7장에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도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사견임을 전제로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7장25절에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7장12절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8장에도 보면 사람들의 의견 또는 인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바울 사도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사 때 사용한 음식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그 음식을 먹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을 자주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질서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는 사도 바울의 사견이 참으로 중요한 상황입니다. 고린도 전서에 있는 많은 내용이 사도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들고 상황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화란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사견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혜로운 자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고린도 교회에 알맞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모든 일에 다 명령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을 다 기록할수도 없습니다. 다만 인간 파트너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상황에 맞는 의견을 주는 방식을 택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정에 가장이 있고, 교회에 담임 목사가 있고, 회사에 사장이 있고, 학교에 학장이 있고, 국가에 수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리더들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기울이는 리더이냐 아니냐는 그가 인도하는 그룹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귀 기울일 때는 좋은 리더인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백성을 망하게 하는 리더가 됩니다. 다른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십은 인간의 사견의 중요성 그리고 그 사견이 무엇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너무 중요하지만 인간의 모든 부분을 세밀하게 문자로 터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인간의 마음을 터치하셔서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시죠. 하나님이 성경에 TV, 라디오, 인터넷을 거론하지 않으셨지만 그의 자녀들에게 이런 분야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주셨습니다. 기독교 리더들이 문자적인 하나님 말씀만 붙잡다보니 결국에는 이렇게 새롭게 이슈로 급부상하는 것들에 대해 무시하게 또한 무지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새로운 이슈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견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품고 하는 사견입니다. 우상숭배 때 사용했던 음식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도 새로운 이슈입니다.
그렇기에 리더는 중요한 것입니다. 리더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오늘날의 컨텍스트(상황)에 맞게 성경을 해석하며 새로운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때 따르는 무리들이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유를 경험합니다.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리더가 게으르면 너무나 간단하게 말을 합니다. “그건, 성경에 없으니까 하지마!” 그런 지도자와 함께 있는 추종자들은 끊임없이 나오는 새로운 이슈에 대해 눈과 귀를 가려야 합니다. 아니면 몰래 그런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죄의식이 발생하죠. 그것이 사탄의 고단수 수법입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리더가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사람들과 섞여 산다면 그것이 얼마나 듣는 이를 힘들게 하는지 그 리더도 잘알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새롭게 부상하는 새 분야에서 기독교인들은 기여는커녕 방해자로만 여겨집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기 때문에 일단 반대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다 ‘비성경적’이라는 태도는 기독교인을 점점 세상에서 영향력이 없는 존재로 만듭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 자동차, 전화, 셀폰, 컴퓨터, 노트북, 비디오 프로젝터, 음향 시설, 전기, 각종 악기, 인터넷, TV, 영화 등이 기독교인들에게도 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거론한 분야들은 대부분 초기에는 ‘비성경적’인 분야였습니다.
새로운 분야가 나오면 하나님 마음을 품은 자들이 이것을 성경에 비추어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 문명의 도구는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발견한 것들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신학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합당한 설교를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7장과 8장에서 그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견임을 전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경 속에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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