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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급조절의 예수님

밝은터 2010. 1. 20. 12:56

Indians V Braves X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강하게 말씀하시는 분이다. 제자들에게 손을 잘라라, 눈을 빼라는 등의 말씀을 하신 것은 진짜로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하니 잘 지키라는 뜻으로 강하게 비유를 드신 것이다.

마가복음 1123절과 24절의 말씀을 보면 산을 움직이는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산을 상상한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드신 강한 비유였다. 강력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내용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던 것이다. 제자들은 그나마 예수님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이 정도로 예를 드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예수님이 관계적이면서 기능적인 면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말씀의 완급을 조절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야구장의 투수를 한번 상상해 보자. 투수가 계속 똑같은 스피드로 공을 던진다고 하면 타자가 어떻게 할까. 아주 치기 좋을 것이다. 투수는 완급을 잘 조절해야 좋은 투수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빠른 공을 던졌다가 어떤 상황에서는 느린 공을 던진다. 또 어떤 상황에서는 변화구를 던졌다가 어떤 상황에서는 유인구를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게 공을 던지는 목적이 무엇인가. 타자를 아웃시키길 원해서다.

예수님도 완급 조절을 잘 하시는 투수였던 것 같다. 어떤 때는 강한 어조로 말씀을 전하셨다가 어떤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잘 못 알아듣게 비유로 말씀하셨다가 어떤 때는 그냥 직설적 명령을 한다. 여기서 그 분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이 세상의 구원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완급 조절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야구를 잘 하셨다면 제구력이 뛰어난 그리고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였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마치 계속 빠른 공만 던지는 투수로 생각할 때가 있다. 항상 빠른 직구로 상대에 직격탄을 날리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님은 완급을 조절하는 제구력(control)이 뛰어나고 커맨드(command)가 좋은 투수였을 것이다.

야구를 볼 때도 그렇다. 투수가 얼마나 빠른 공을 던졌느냐만 보면 야구 정말 재미없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 투수' 그렉 매덕스의 환상적인 완급 조절의 경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완급 조절, 컨트롤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야구팬은 투수와 타자의 신경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그래서 공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된다.

예수님의 사역도 비슷했다. 예수님을 그저 직구만을 던지는 투수로 이해했을 때 성경은 싱겁기 짝이 없다. 제대로 성경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예수님을 완급 조절을 잘 하는 투수로 이해한다면 성경의 다이나믹한 면과 유연성에 감탄을 하게 된다.

마가복음 11장의 말씀도 그렇다. 예수님을 직구 투수만으로 이해하면 우리는 "그럼 산을 움직이지 못하면 믿음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로 이해하면 "아 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들도 믿음을 가지면 이겨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산과 같이 앞에 우뚝 서 있는 장벽이 많이 있다. 그런 장벽을 기도와 믿음으로써 넘어서야 하는데 우리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옆에 계심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그 장벽을 넘어서든지 아니면 그것을 장벽으로 느끼지 않게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는 예수님은 완급 조절을 잘 하시는 투수였다는 것,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밝은터]